한국일보

둥근 여름정원

2005-08-2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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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백칼럼

▶ 백 순 화백문학 미주지부회장

/조가비 분홍색 아네모네 위에/ 이 아침빛이 튀기고 있다/ 꽃 줄기 위에 흔들리며// 푸른색이 박힌 베로니카 밑으로/ 빛이 개울 안에서 흐르고 있다/ 꿀벌의 혹 달린 등을 넘어서// 이 아침 나는 보았다/ 빛이 장미의 비단 꽃잎에 입맞추는 것을/ 두 번째 꽃피우는 장미,/ 늦게 꽃피우는 꽃은/ 브랜디에 취해 붉어져 있다./ 알 수 없는 야릇한 즐거움이 나를 흔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집의 문들을 닫고/ 그래서 나는 내 골방으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다/ 그래서 나는 반쯤 어두운 방안에 앉아 있다/ 내 책상에 곱추처럼 엎드려/ 나를 유혹할 수 있는/ 아무런 볼 것도 없이/ 내 창문아래/ 부풀게 쌓인 잡동사니 무더기밖에는,/ 축축한 오래된 악취 풍기는 더미밖에는;// 그리고 나는 내 노트북을 집어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얼룩진 페이지 위에/ 내가 낙서해 놓은 아직도 마르지 않은 단어들을// “빛이 튀고 있다./ 나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 새 생명이 나를 위하여 시작하는 그 때를,/ 매일 그러한 것 같이,/ 매일 그러한 것 같이.////
이 시는 지난 7월 29일에 100세를 맞이한 스텐리 큐닛츠(Stanley Kunitz)가 자신이 직접 만든 정원을 매 여름마다 돌보면서 창작한 정원시이다. 그는 1905년 Massachusetts주 Worcester에서 태어나 하바드대학에서 영어를 수업한 지성인시인이고 Pulitzer Award, Bolinger Award, National Book Award등을 수상하였으며 두 번이니 미국국회도서관의 계관시인의 영예를 받은 유명한 시인이지만 정원 가꾸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정원시인이다. 그는 1962년 Massachusetts주 Cape Cod근처 Provincetown에 모래밭을 해초와 핏모스로 일구어 얼마정도 크기의 둥근 정원을 만들었다.
그는 매년 여름철이 되면 그 곳 정원을 찾아가 가꾸면서 시와 생명과 정원을 같은 것으로 접목시키어 시를 읊고 있다. 100세 생일잔치날 찾아 온 기자들이 시가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시는 나의 생명력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답할 정도로 시와 생명은 그에게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장한다. 시인은 시를 섬기는 자(Servant of Poem)가 되어야 한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마음과 직관과 인내 등을 아낌없이 시에 쏟아 부어 시를 섬기어야 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제창한다.
스텐리 큐닛츠는 얼마나 정원을 사랑하는지 시와 정원을 동일한 것으로 설명한다. “나는 정원을 스탄자가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고랑이 정원 전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이 스탄자가 시에게 생명을 준다. 정원이나 시나 그의 형식이 휴식을 제공하고, 정원의 골이나 시의 스탄자가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라고.
‘둥근 정원’이라는 정원시에서 스텐리 쿠닛츠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적어도 3가지의 형이상(形而上)을 추출해 낼 수 있겠다.
첫째 형이상은 자연의 생명력이다. 자연의 힘인 빛이 아네모네 위에 ‘튀기고’, 개울 안에 ‘흐르고’, 장미의 비단꽃잎에 ‘입 맞추는’ 모습을 둥근 정원에서 관찰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형상화한 것이다. 빛은 모든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삶이 흐르도록 삶을 인도하여 주며, 사랑까지도 아끼지 않는 자연의 힘이다.
시인은 햇빛이 쨍쨍한 여름철에 정원에서 빛의 생명력을 감지한 것이다.
둘째 형이상은 인생의 어두움이다. 자연에는 생명력이 있지만 자기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어두움과 아무런 볼 것 없음만이 있다. 반쯤 컴컴한 골방, 잡동사니 무더기, 악취 풍기는 더미 등이 정원에 있는 자연의 생명력과 대조를 이룬다. 자연과 인생, 빛과 어두움, 등의 대치와 상극을 시인은 정원에서 발견한 것이다.
셋째 형이상은 생명의 부활이다. 인생의 어두움만이 정원에 있다고 한다면 진리는 반쯤 완성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잡동사니 무더기와 악취 풍기는 더미가 가득한 어두운 골방에 책상 위에 곱사등으로 엎드려 있으면서 자기가 정원에서 본 빛의 생명력을 기술한 시구를 큰 소리내어 읽고 생명이 새롭게 시작하는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매일 생명의 부활이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
시인은 이렇게 둥근 정원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인생의 어두움의 대치가운데에서 내일 생명의 부활이 있음을 터득하고 지금도 시와 생명과 정원을 즐기고 있다.
백 순 화백문학 미주지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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