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츠브루그의 재산 1호는 모차르트
거리에서부터 상품까지 모두 그의 이름
“인생은 짧고…”
게트라이데가쎄 9번지-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태어난 곳이다. 그가 어릴 적 뛰어 놀던 게트라이데가쎄 골목은 지금 살츠브루그에서 제일 번화한 샤핑거리로 변했다. 1년에 400만명의 관광객이 볼프강의 생가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고려하면 “선조 잘 둔 덕분에 후손들이 톡톡히 덕을 보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시내 어디를 가도 ‘모차르트’ ‘볼프강’ 아니면 ‘아마데우스’ 라는 단어가 걸쳐져 있고 상품도 그의 이름 일색이다. 모차르트 향수, 모차르트 비누, 모차르트 와인, 모차르트 공항, 모차르트 플라자, 아마데우스 스키장, 볼프강 헬스클럽 등등. 그 중에서도 모차르트 쿠게른이라는 초컬릿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호텔에서도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붙은 방은 비싸다.
살츠브루그가 모차르트를 수호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왜냐하면 모차르트는 주교와 사이가 나빠진 후 살츠브루그에서 쫓겨나 비엔나에서 불우한 최후를 마쳤으며 지금도 이 천재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살츠브루그에 있는 그의 가족 무덤이 더 귀중하게 가꾸어지고 있다.
1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 음악의 천재를 당시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재능 있는 젊은이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하이든만이 볼프강의 재주를 알아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계가 음악의 천재를 잃고도 슬퍼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면서 볼프강의 아들이 음악가가 될 의사가 있다면 자신이 가르치겠다고 미망인에게 제의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6세 때 미뉴에트, 9세 때 교향곡을, 11세에 오라토리오,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했다. 가는 곳마다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10년간에 걸친 아버지와의 유럽 여행에서 각국의 왕을 모두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중에서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사 여제는 왕자들이 입는 옷을 연주복으로 하사했다. 그는 35년 평생 626곡을 작곡했으며 ‘매직 플룻’(마적),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등의 오페라와 ‘주피터’등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20번, 미사곡 레퀴엠등 모든 분야에 걸쳐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너무 뛰어나면 질시 받는 법이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당시 비엔나 궁정 악장에 발탁되지 못해 생활고에 허덕였다는 것은 ‘인간이 평가하는 인간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를 시기한 나머지 과로시켜 죽게 한 살리에리라는 인물이 과연 존재했는지는 입증된 것이 없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혼신을 다해 레퀴엠을 만든 것은 사실이며 그의 제자가 후일 이 곡의 미완성 부분을 작곡해 마무리지었다.
모차르트 음악제인 ‘살츠브루그 페스티벌’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화려한 음악축제가 된 것도 모차르트 작품의 다양성 때문이다. 톱 클래스 지휘자, 오페라 가수, 내로라 하는 피아노 및 바이얼린 연주자들이 해마다 7, 8월이면 세계에서 모여든다. 살츠부르그의 음악학교 ‘모차르테움’은 젊은 음악학도의 등용문이며 카라얀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를 추방한 살츠브루그가 모차르트 페스티벌로 유명해지고 온 도시의 경제가 그에게 매달려 있는 것을 생각하며 그가 태어난 게트라다가쎄 골목을 걷노라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피부로 다가와 느껴진다.
모차르트 거리로 불리우는 게트라이데가쎄. 볼프강이 이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유명한 쇼핑가로 변했다.
3층이 모차르트가 출생한 아파트. 현재는 박물관.
살츠브루그의 페스티벌 포스터.
성당 입구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고 팁을 받는 모차르테움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