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가장 아름다운 관계

2004-10-1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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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종교전문기자>

삶과 죽음의 차이는 어느 정도로 떨어져 있는 걸까. 삶이란 곧 생을 의미하는데 그 생이란 살아있음을 뜻한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숨쉬고 먹고 마시고 하는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것도 포함된다. 노동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과 지출을 통해 삶은 지속된다.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할 때, 그 살아있음의 의미는 다양하다. 그 의미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관계성이다. 관계성이란 태어날 때에 이미 성립된다. 태어날 때의 이 관계는 자신이 택해서 가져진 관계가 아니다.


주어진 관계, 즉 절대 수동적인 관계의 설정이다. 그것은 ‘내’가 태어남으로 인한 부모의 존재가 ‘부모’로서 부여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또한 자식의 존재가 ‘자식’으로서 부여되는 중요한 기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태어나 맺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니, 부모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된다. ‘누구누구의 자식’이라는 족보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부모 살아 생전 효도하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가장 바람직한 관계성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자식이 훌륭해도 부모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하지 못한다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제로가 돼버린다.

어느 50대 주부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다 느껴 보내온 사연이다.
요즘은 그 동안 매일 매일 해 오던 일들이 점점 힘들고 속력이 느려지는 걸 느낍니다. 나이 타령하는 친구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나는 나이에 전혀 개의치 않겠노라’고 호언 해오던 나 자신이 무색하리 만큼 매사가 피곤하고 벅차게 느껴지네요. 아마 모시고 있는 친정 아버님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몇 달 전부터 소변을 자주 실수하시는 바람에 기저귀를 채워 드리고 난 후, 제가 받은 심적 영향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당하고 보니 마음이 서글퍼지네요. 기저귀를 갈아들일 때마다 약간은 난감해 하시는 표정이 가슴 아프지요. 아직은 자존심이 있으신데 무척 혼돈스러우신가 봐요.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시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슬퍼지고, 아버님이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일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반비례하여 제가 거들어 드려야 되는 양이 늘어나면서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한계선이 어딜까’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더 많은 시간을 아버님과 함께 하면서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을 찾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아버님께 받은 그 많은 사랑을 되돌려 드려야지요. 참으로 좋으신 분이거든요. 아버님이 점점 더 나빠지시더라도 잘 감당해 낼 인내와 힘을 달라고 기도 드리지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설정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고 기저귀까지 채워드리는 이 상황에서 절정을 이룬다. 자존심이 남아 있는 아버지지만 치매라는 병에 걸려 소변을 실수하게 되며 50대의 딸에게 기저귀를 채워지게 된다. 이런 관계가 자식으로 주어진 절대 수동적 관계의 정점을 이룬다. 이런 형상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살아있는 효도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병간호를 감당해 내야 하는 한계성이란 어디일까.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생각은 삶과 죽음의 차이까지 이끌어가게 된다. 그 주부의 친정 아버님의 삶이란 곧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다. 죽음이란 곧 절망을 가리키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친정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많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 아버님을 병간호하는 그 주부의 심정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중 가장 심오한 점을 드러내 준다. 언제 돌아 가실지도 모르는 아버님. 살아 생전에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자식으로서 받아온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다시 부모에게로 되돌리는 이런 관계야말로 사람이 갖는 관계 중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하
나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삶과 죽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다 큰 딸, 아니 50대의 딸에게 기저귀를 갈아 끼워져야 하는 아버지의 삶은 곧 살아있음 그 자체다. 살아 있기에 딸에게 효를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비록 수동적 관계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해도 그 수동적 관계가 능동적 관계로의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관계의 부재가 아닌 관계 안에서 모든 일을 발생한다. 효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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