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낭만의 도시
2004-10-07 (목) 12:00:00
엄영옥<자원상담가>
희부연 동쪽 하늘이 채 밝아오기도 전에 밴드 연습을 가는 큰애를 졸음 섞인 학교 앞에 내려다 놓고 언덕을 올라오며 문득 마주친 짙은 안개! 미세한 고운 방울방울에 낙엽 진 유카리 잎들이 이슬비 속 인양 젖어 숨 속으로 스며와 신비로운 숲의 향기로 영혼을 흠뻑 적시는 곳! 우리는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
붉은 해가 건너편 샌프란시스코만의 산등성이를 넘을 때쯤이면 바다는 일렁이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듯 주황빛으로 물들어 출렁이고 금문교는 번쩍이는 황금 옷으로 갈아입는다. 황금 러쉬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넓은 바다를 향해 내리 달리는 산자락은 눈 깜박할 사이에 마술의 금빛 다리를 감싸안으며 꿈나라처럼 보랏빛으로 멀어져 간다. 우리는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
일 번 고속도로의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내려 가다보면 기암절벽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푸른 태평양을 만나는 곳에 하얀 모래가 고운, 조그만 모래사장이 숨겨져 있다. 오랜만에 맨발의 소녀가 되어 밀려오는 흰머리의 파도에 발을 씻기며 한없이 걷다가, 피곤하면 바위에 걸터앉아 망망한 대양을 바라본다. 너무도 광활해서 도저히 내 작은 가슴으로는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무게에 가슴이 꽉 차 올라 말을 잊는다. 우리는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
금문교를 향해 바다 속으로 빠져들듯이 쪽나무로 길게 이어진 버클리 선착장에는 낚시꾼도 많고 저녁이면 연인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계절 없이 불어대는 사나운 바람을 막느라 한여름에도 두툼한 외투와 모자로 무장을 하고 낚싯줄 끝에 눈이 달린 듯 앉아있는, 어떤 낚시꾼의 거친 얼굴에 세월이 구워 논 깊고 굵은 주름살이 정겹다. 어둑어둑 저물어 가는 하늘 밑에서 고독의 큰 그림자를 밀어내듯 한 쌍의 연인이 서로 기대서서 듬직하게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둘러친 모습이 그림 같은 곳! 우리는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