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글을 쓰는 삶
2004-07-27 (화) 12:00:00
헬렌 신<화가>
얼마 전 어린이 백일장과 여성 문학상 시상식을 보면 한국의 문화 성향 변화에 따라 이민자의 문화 형태도 많이 바뀌어 졌다고 생각된다. 베이 지역도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글 쓰기 작업이 여러 모양으로 활발히 전개되는 것은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지인들이 가끔씩 한 자리에 모여 이국 땅에서의 망향을 풀어 헤칠 때가 있었는데 그 무렵 한국의 모 신문사 편집장이 이민 아닌 이민으로 계실 때 그분 말이 기억난다.
아내는 햄버거 샵에서 일하는데 글을 쓴다는 게 마음이 편치 못해 글을 쓸 수 없다고 넉두리를 풀었다. 당시에는 부모가 자녀들이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게 자랑처럼 여긴 때였으니 그때는 전문인들 역시 글 쓴다는 게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너 나 없이 글을 쓴다는 게 자랑을 넘어 자부심을 갖게되고 교회마다 한글 학교가 생겨 어린이들도 모국어를 배울 수 있으니 살기가 많이 좋아졌다.
샤르트르 어머니는 아들의 눈이 사시라는 것을 알고 앞머리 카락을 귀 밑 언저리까지 기르고 아들의 눈을 가려 주었다. 샤르트르는 오른쪽 시력을 잃은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다. 그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신을 근심스럽고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두 살 되던 해 샤르트르는 자신이 아름다운 왕자가 아닌 두꺼비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실명 직전이 되어서도 늘 해왔던 대로 날마다 글을 썼다. 무슨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루 하루 노력하는 삶을 위해 글을 쓴 것이다.
샤르트르가 자신의 삶을 다 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동반자였던 시몬느 드 보봐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샤르트르의 초고의 글을 읽고 한 글자도 소홀이 하지 않고 혹독한 비판과 격려의 독자였으며 항상 샤르트르가 깨어 있게 만들었다. 1977년 왼쪽 시력마저 잃어 버렸을 때 시몬느는 샤르트르와 함께 녹음기를 이용하며 자서전인 말을 마무리했다. 쓴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라며 그가 쓴 소설을 고쳐 쓰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몬느는 그의 눈과 손이 되어 주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샤르트르는 나는 무엇으로나 실망하지 않았다. 내 삶은 장애로 조금 불편했으나 그동안 나는 늘 글을 써 왔으며 또 살아 왔기 때문에 애석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혀 없다. 행위하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참다운 인간이다. 라고 말했듯이 이민와 모국어로 글을 쓰는 작업이 끈임없이 계속 될 때 사회가 풍성하게 되며 2세, 3세들 에게는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과 부모 나라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질 것이라 믿는다.
글을 쓴 다는 것은 다른 삶을 캐내는 것이라 여겨지며 문화에 대한 이질감을 좁혀주는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