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시각 /’한국인의 냄비근성’

2004-07-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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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겸 기자

이라크 팔루자에서 테러조직 ‘일신교와 지하드’에 납치돼 6월 22일(현지시각) 팔루자로부터 30km 떨어진 지점에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참혹하게 피살된 체 발견된 고(故) 김선일씨.
그의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민 모두 분개하고 땅을 치며 통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너도나도 나라의 힘없음과 무능력한 외교정책을 질타했다.
그리고 채 1달도 지나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과 외교부간의 지루한 책임공방 외에는 김선일씨는 한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때 인터넷을 도배했던 전쟁이 없고 평화가 있는 곳으로라는 수많은 애도의 글도 지금 파병문제 취소하지말고 그냥 동의를 해서 이라크 싹 쓸어버립시다라고 적힌 몇 천 건에 달하던 분노의 글도 그의 억울한 죽음을 함께 하자는 사이버 추모 홈페이지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이것이 쉽게 끓어오르고 이내 식어버리는 소위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란 말인가. 한민족은 타인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함께 걱정하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유달리 강한 ‘정’이 많은 민족이다. 그리고 건망증도 심한 민족이다. 분하고 억울한 일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린다. 일이 터질 당시에만 죽고 살기로 따지고 덤비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모든 걸 까맣게 잊는다. 이 같은 국민성이 타고난 천성이라면 고치자, 하루빨리 고쳐서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세계에서 아무도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을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만들자. 그래서 다시는 고(故) 김선일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은 만들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그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기억하자.
난 살고 싶다.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 난 죽고 싶지 않다. 파병을 철회해 달라. 난 살고 싶다.
한국인이여 제발 힘없어서 파병도 자국 의사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설움을 기억하자. 엉엉 소리내 몇 번 같이 울어주기 보다 왜 당해야만 하는지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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