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전산책/죽음마저 악용하는 세력들과 업보

2004-07-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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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문학박사>

이라크에서 피랍되었던 김선일씨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주전 강의실에서였다. 막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한 참석자가 불쑥 질문을 하였다.
종교인으로서 김선일씨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냥 업보(業報)라고 생각하고 보원행(報寃行)을 해야합니까?
마침 그 지난주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강의에서 도(道)를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원칙과 수행방법인 달마대사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을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억울함을 당했을 때,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하는 것을 말하는 ‘보원행(報寃行)’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道)를 닦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면 마땅히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해야한다; 나는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나는 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지엽말단 적인 것을 쫓아 여러 가지로 모습으로 방황해 왔다. 그러면서 억울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많이 일으키고 수없이 계율을 위반하는 죄를 범했다. 지금 비록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나의 과거의 잘못으로 벌을 받고 있다. 나쁜 업의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어떤 신이나 인간도 미리 예견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 달게 받아들여 억울해하고 하소연하지 않으리라.>


질문자의 의도는 과연 김선일씨와 같은 경우를 당해서도 억울해 하지 않고 그냥 과거의 업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보원행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당사자나 가족이 보원행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살해 뉴스가 보도되자 응징을 해야 한다며 파병 찬성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봐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우리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육신을 가진 우리 개개인은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고 김선일씨의 모습도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순교자의 거룩한 모습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그리고 원초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이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더 이상 나쁜 업보를 짓지 않도록, 또 우리 스스로도 그런 업보를 함께 짓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이다.
어쩌면 원초적인 업보는 같은 아버지의 자식인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이복형제가 누가 가문의 정통성을 계승하느냐하는 오래된 기독교세력(유대민족)과 이슬람세력(아랍민족)의 대립이라는 두 집단이 함께 지은 공업(共業)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까이는 기득권을 유지하려했던 이라크의 집권자와 전쟁을 통해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미국의 군산정(軍産政) 복합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낳은 업보이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군납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 했던 김선일 씨가 근무하던 회사와, 어떤 연유에서건 그런 회사에 고용되고, 선교라는 명분으로 현지에서 이라크인들을 자극하는 활동을 해온 본인의 업보이다.

보도를 접하면 진정한 애도와 공업(共業)에 대한 반성보다는 김씨의 죽음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자들만이 온통 판을 치는 것 같다. 파병에 대한 찬반의 극단적 대립과 책임회피, 정쟁의 도구로 책임소재를 따지는 일, 김씨를 순교자로 추켜세우는 종교적 명분의 미화작업, 그 어떤 것도 전쟁과 테러, 살상의 재발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파병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두 집단이 짓는 공업에 우리가 끼어 들어 더욱 악업(惡業)을 짓는데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정당화한다면 그런 정권은 이미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과 행동은 또 다른 집단 이익을 위해 이용될 뿐이며, 순교자로 미화하는 작업도 오히려 종교적 편견과 적대감을 부추기는데 이용될 뿐이다.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우리가 짓는 업이 어떤 무서운 업보를 초래할 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아 보원행을 실천하며, 더 이상 나쁜 업를 짓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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