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글/ 나의 삶 나의 음악
2004-07-01 (목) 12:00:00
김종대<북가주 자선재단 대표>
내가 평생동안 음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누님과 중학교 음악선생님 그리고 서울 예술 고등학교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아는 노래가 없어 음악 실기 시험 땐 항상 애국가만 불러 우리 반의 웃음거리가 돼곤 했다. 4학년이 되던 해 성악가 누님께 노래 하나만 가르쳐 달라고 졸라, 배운 노래가 ‘산타루치아’였다. 이태로 원어로 이 노래를 부르니, 학교가 발칵 뒤집어 졌고 콩쿠르에 나가라고 야단이고, 내가 여학생보다 더 높은 음을 내는 Boy 소프라노 였다.
나의 누님은 경상남도 음악 콩쿠르를 휩쓸었다. 이화 여고가 6.25로 부산에 피난 왔을 때 임원식 음악 선생님(후에 그는 예고 초대 교장을 거쳐 KBS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됐음)이 누나의 재능을 알아보고, 환도시 서울 데려가길 간청해 어린 누나를 이화여고에 유학 보냈다.
누나는 예고가 이화여고에서 분리되어 나왔을 때 제 1회 졸업생이 됐으며 그 당시 전국 고등부 음악 콩쿠르는 성악과 기악 모두 예고가 휩쓸었고 당연히 누나도 성악 부문에 입상했다. 서울 예고는 매년 홍보차 콩쿠르 입상자들을 데리고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지에 순회공연을 다녔는데, 생긴지 얼마 안 돼 예산이 부족하여 부산에 오면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공연 전 우리집 안방에서 리허설 한 후, 공연장으로 몰려가면 그 당시 12살이던 나는 죄도 없이 끌려가 졸다 깨다 하품하며 고문당하 듯 참석한 음악회가 내가 음악을 접한 시초며 평생 음악의 포로가 된 계기다.
우연히 중 3때 우리 음악선생님 독창회에 갔는 데 난생처음 사람의 목소리가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가 있을까하고 쇼크를 먹었으며, 눈만 뜨면 내 머리 속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돈만 생기면 오페라 가수들의 음반을 사서 달아 찍찍 잡음이 들릴 때까지 듣고 또 들었으며, 카루소, 비욜링, 터커, 칠리, 타리아비니, 스테파노 등등의 노래를 닥치는 대로 듣고 흉내내고 외워 나갔다.
과외 공부하고 밤늦게 돌아 올 때면 캄캄한 밤에 창공에 반짝이는 별들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주면 나는 공명되어 오는 내 소리에 내가 반해 황홀해 하곤 했으며, 결국 한번은 고성방가 죄로 경찰에 잡혀갔다. 그 당시 부산은 서울에 비해 문화가 많이 뒤져서 음악회는 별로 없었고, 누구누구의 제자 발표회가 전부였으며 난 이것들로 음악에 대한 나의 갈증을 풀 수 밖에 없었다.
연세의대 신입생 환영파티에서 나는 두각을 나타냈고 의대생들이 내 음악을 사랑해줘서, 그 후론 공식행사 때 마다 솔리스트로 확약하였다. 그 당시 연대 개교기념일엔 대강당에서 음대생만 제외하고 음대교수들이 심사하는 아마추어 콩쿨대회가 열렸으며 상금이 걸려 있어 내가 2달의 연습 끝에 ‘가고파’를 갖고 출전해 1등하여 상금으로 내 친구들 모두 명동 학사 주점에 데리고 가서 밤 늦도록 술 마시고 노래하던 기억이 난다.
또 서울시내 전 의예과 학생들 합동 음악회를 만들어 2백여 의대 합창단이 곽상수 교수의 지휘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할 때 내가 2년 역속 남자 솔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힘든 이민 생활로 나의 정서는 황폐해 갔으나 내 아이들(아들 하나 딸 하나)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쳐 왔다. 요즘 어린이 합창단을 비롯 많은 음악단체들이 생겨나 많은 연주회가 열리고,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있는 것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난 병원에서 환자에게 수술후 통증이 1에서 10까지의 Scale 중 어디냐고 종종 묻곤 한다.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니까 누군가가 음악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하며 무안을 준다. 우리 모두가 음악을 좋아한다해도 그 강도는 다 다를 것이다. 그저 귓전으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음악에 삶을 바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음악이 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할 것 같다.
우리는 우리 가족과 이웃들에게 큰 돈 들이지 않고 음악을 통하여 생의 환희,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또 죽고 싶도록 아름다운 슬픔 등등 이런 것들을 평생 맛보며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선 합창단 공연이 열리면 내 아이들이 LA에서 올라와 문 앞에서 표도 받고 음악회도 즐기곤 한다. 나는 내 애들에게 돈 보다 소중한 그 무엇을 넘겨주려 애써왔고, 이제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