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시각/김선일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며

2004-06-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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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제목: 故 김선일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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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혔다가 무고하게 희생된 故 김선일씨의 참사를 보며 땅이라도 치고 싶은 슬픔을 느끼지 않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그가 가난한 환경에도 비뚤어지지 않고 성실하게 인생을 개척해온 젊은이라는 것을 접하며,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허무하게 져버린 그가 너무도 안타깝다.
그러나 이번 인질사태에 대응한 한국정부와 언론, 그리고 일반 네티즌 등의 반응은 미숙하고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한국군의 철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4시간 후 인질을 참수하겠다는 납치범들의 요구에 너무도 성급히 대응한 한국정부의 무능함에 분노가 느껴진다. 그토록 짧은 협상시한이 주어졌다면 추가파병을 강행한다는 식의 반응을 즉각 내보일 필요가 없었다.
추가파병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므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곧 납치범에게 인질을 죽이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름없다. 그보다는 신중한 행보로 진지하게 협상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또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온 세상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한 생명을 절벽으로 몰아붙인 정부의 무능한 협상태도가 거슬린다.
두 번째는 고 김선일씨가 신학을 전공했고, 아랍권 선교를 위해 이라크 근무를 자원했다는 식의 국내언론의 상세한 신상보도는 분명 실수였다. 아랍권 국가에서 기독교 선교는 현재 불법이다. 선교사들은 모두 학생이나 직장인 등으로 위장해 몰래 선교해야 하는 실정에서 고인이 선교사 지망생임을 밝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였다.
고인의 참변이 알려진 후 본국 네티즌과 일부 보수언론의 선동은 몹시 걱정되는 대목이다. 전군을 동원해 이라크를 싹쓸이해야 한다는 감정적인 네티즌의 글이나 테러분자를 색출해 응징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사설은 몹시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군의 파병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군대는 이라크를 재건하고, 그들을 치료하고, 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파병되는 것이지 무장단체를 쳐부수기 위해 가는 전투병이 아니다. 이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한다면 아랍권 20여 국가를 한국의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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