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그 나그네가 걸어가는 길목에는 두 갈래 길이 뻗쳐 있었다. 그런데 그는 탄탄한 대로(大路)로 가지 않고 돌부리 투성이인 오솔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길이 비록 험한 길일망정, 그 길이 맞닿은 고개 너머 마을에는 행복이란 열매가 열린 신비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거라는 동화적(童話的)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나그네가 70여 평생을 걸어온 그 오솔길 너머 마을에 과연 행복의 열매가 열린 신기한 나무가 서 있었을까?
6월이 오면 나는 내가 겪은 6.25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해 이후에 내가 걸어온 내 인생여정의 돌짝길을 되돌아 본다. 그 날은 나로 하여금 그 나그네와 같이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한 시발의 날이기도 하다.
6.25! 그 날 나는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던 뇌우(雷雨)라는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구리 해부를 위해 메스를 들고 해부학 교실에 있어야 할 의학도인 내가 왜 그 시각에 국립극장 객석에 앉아 있었을까?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아니 앞으로의 내 인생 역정에 있어서 잘못 전개될 미래를 내 스스로 짐작 못하고 그저 그렇게 연극에 빨려 들어 객석에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중국의 유명한 극작가 조우(曺禹)가 쓴 뇌우, 극중의 주인공인 중국 상류사회 가정의 장남인 주 평(周萍 후일 내가 고향에서 이 연극의 주인공으로 공연하여 내 필명 朱萍이 되어 버렸지만)과 하인의 딸인 사봉(四鳳)과의 이루어지지 못할 애정관계!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후처인 젊고 예쁜 <번계>란 여인의 주평에 대한 연정! 이야말로 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뒤죽박죽인 애정문제를 다룬 작품인 것이다. 어쩌면 이는 그 날 6.25 이후에 내 생애에서 꼬이고 꼬인, 또 내가 방향감각을 잃고 기로에서 허둥대는 내 인생의 숙명적인 앞날을 그 뇌우 무대를 통해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연극이 한참 무르익고 있을 때, 갑자기 막이 내려지고, 극장의 안내방송을 통해 흘러 나온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 오늘 새벽 3 . 8선을 넘어 온 인민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있으니 빨리 귀가하라는 독촉의 방송이 극장 안에 거듭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연극에 몰입 되어 있던 관객들은 선잠을 깬 듯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극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정말로 예기치 못한 이 돌발사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상(假想)의 스토리가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극장을 나와 한강철교 근처에 있는 하숙집으로 가기 위해 광화문에서 노량진 행 전차를 집어 탔다.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귓전으로 들으며 전차 차창을 통하여 나는 우왕좌왕하는 서울 시민의 물결을 내다보고 있었다.
인민군 치하(治下)에서 숨어 지낸 두 달! 후리 치기 식 강제모병으로 인민군에 의해 끌려가 의용군이 된 많은 젊은이들!
8월도 중반에 접어 들었을 때, 나는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한 가지 묘책(妙策)을 생각해 내었다. 그 묘책이란 서울을 빠져나가 내 고향이 있는 남쪽으로 안전하게 내려가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강교통병원에서 폐병 말기의 가짜 X레이 (남의 것) 사진 한 장을 그 병원의 아는 의사를 통해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내가 숨어 자냈던 동네인 정릉인민위원회로 가서, 가지고 간 X레이 사진을 내밀고는 폐병 요양차 남쪽으로 피난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피난증을 발급 받은 나는 그날로 남향 길에 올랐다. 내 앞에는 국도(國道)라는 대로가 뻗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길로 걸어가지 못하고 산길을 타고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국도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쌕쌕이>란 미군 전투기가 날라와 인민군의 진군을 막기 위해 기총소사를 가하고 있었기 때문에서였다. 그리하여 천리 길을 걸어 서울을 출발한지 두 달 만에 나는 고향의 부모 품에 안기는 기적 같은 행운을 안았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의용군과 학도병에 끌려가 죽어간 내 또래의 젊은이와 친구들의 죽음들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나의 기지로 목숨을 건진 후에도 험한 산길을 타고 피난길을 걸어갔듯이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그 시절 생활을 보장 받지 못하는 연극의 길 그것도 황무지 같은 아동극 분야에 발을 담그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이 황무지를 개간하느라 무진 고생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힘든 일을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패잔병 같이 반 봇짐을 싸 짊어 지고 이 미국 땅으로 옮겨 와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28년!
이 6월에 나는 생각해 본다. 6. 25가 나로 하여금 아동극분야라는 험난한 길을 가게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을 두고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하고... 그렇다면 그 나그네는 그가 걸어간 그 오솔길 너머 마을에서 행복의 열매나무를 찾은 걸까? 그런데 나와는 달리 대로인 의사의 길로 걸어간 다른 나그네는 지금 얼마만큼의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