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노재경 - 마샬 대법관의 가르침 (1/2)

2004-06-1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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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움과 차별을 받는 흑인 아동들보다 미움과 차별을 어른들로부터 배우며 자라야 하는 백인 아동들이 더 우려된다”는 말은 위대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위대한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그 위대한 인물은 다름아닌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했던 1908년에 태어나 1993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마샬(Thurgood Marshall) 대법관이다. 그는 1967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연방대법원 판사가 되어 1991년 은퇴할 때까지 그리고 대법원 판사가 되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업적을 남기면서 역사를 만든 인물이다.

공립 초·중등학교의 인종분리정책이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Brown v. Board of Education)이 50주년을 맞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변호사로 활동 중 이 역사적인 사건을 승소로 이끈 마샬이다. 미국의 인권운동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는 기차 식당칸의 웨이터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샬이 자랄 때 시내의 공공장소에는 흑인들을 위한 화장실이 없었다. 한 번은 시내에 나갔다가 급히 화장실에 가야 할 사정이 생겼는데, 다행히 전차를 타고 부리나케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 화장실까지는 성공적으로 참을 수 없었다는 그의 일화가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그의 부모는 두 아들에게 흑인이라는 사실에 구애받지 말고 자존심을 갖고 당당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마샬이 대학 시절 학비를 충당하려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고용주가 제공하는 유니폼을 착용하고 하는 일이었는데, 키가 크고 말랐던 마샬에게 유니폼 바지는 턱없이 작았다. 이 사실을 백인 고용주에게 말했을 때 그가 들은 대꾸는 다음과 같았다. “일하고 싶으면 잔말말고 입어. 너 때문에 다른 유니폼 바지를 마련하는 것보다 다른 깜둥이(니거 보이)를 데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는 것이었다. 그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바지를 입고 일을 해야 했지만 그가 그 당시 결심한 것은 이런 말을 들으며 자라는 흑인 세대를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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