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전 산책> 용맹정진 (1)

2004-06-0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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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3일 동안 함께 공부하던 몇몇 도반들과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면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했다. 바로 단식(斷食), 철야(徹夜), 묵언(默言)을 한 것이다. 용맹정진은 불교 수행과정에서 마음을 더욱 다잡고 가일층 분발하여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집중 수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용맹정진 기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이나, 잠을 자지 않는 철야, 말을 하지 않는 묵언 가운데 한 두 가지 방편을 선택하는데,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용맹정진을 한다면서 어째서 평소에 하지 않던 단식이나 철야, 묵언을 하는가?

사회운동가나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을 하고 철야 농성이나 침묵시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기도 한다. 또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때로는 묵비권을 행사하여 말을 안하고, 서로 다투고 삐쳐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 단식하고 철야하고, 묵언을 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단식하고, 철야, 묵언하는 것과 불교 수행에서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불교에서는 번뇌 망상이 우리의 지혜를 가리기 때문에 상은 욕망과 집착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재물욕(財物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을 인간의 오욕(五慾)이라고 한다. 단식하고, 철야하고, 묵언을 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 욕망의 한계와 뿌리가 어디인가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욕망에 끄달리며 집착하며 살아가는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는 단식하고 철야, 묵언하는 용맹정진을 통해 욕망에 끄달려 가는 자기 모습, 자기 한계를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어떻게 해야 욕망에 끄달리지 않고 해탈자재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깊이 성찰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과 음식을 먹으면 그것들은 우리 몸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러므로 물과 음식을 끊는 단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원천을 끊는 것이니, 바로 혈육(血肉)의 정(情; 에센스)을 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혈육의 정을 끊는다는 것은 자기 버림을 통해 사사로움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행자들이 부모형제와 가족을 떠나는 진정한 출가(出家)의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다. 단식을 통해 식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의 몸둥아리가 가진 이기적인 욕망을 극복해 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남으로부터, 밖으로부터 나에게 가지고 오려고 하려는 욕망, 내 것으로 취할려고 하는 욕망, 그것이 식욕이기에 식욕은 근본적으로 내 밖에 있는 남과 다른 것을 죽이고 없앰으로써 나를 살리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이다.
잠을 자지 않고 철야를 하는 것은 수면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잠은 인간 오욕가운데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이다. 오죽하면 잠을 수마(睡魔)라고 까지 할까. 수면욕은 인간이 편해지려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욕구이다. 편해지려는 욕구가 치성해지면 나태하게 되어서 제대로 정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면욕을 극복하지 못하면 깨어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한결같은 오매일여(寤寐一如), 심지어 꿈꿀 때조차도 한결같이 정신은 깨어있어야 한다는 몽중일여(夢中一如)의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또한 반야사상의 공(空)의 도리(道理)에서 보면 ‘잠이란 원래 없다’고 하는데, 과연 잠이 원래 없는지를 철야정진을 통해 체험해 보는 것이 철야정진의 의미이다.

묵언은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방편이다. 말이 이성(異性)을 유혹하는 데 쓰이면 색욕의 발동이 되며, 남한테 인정받고 잘난 척 하는 데로 발동하면 명예욕이 된다. 또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남을 설득하고 비판, 비난, 말공격을 하는 것은 권력욕의 발현이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이 수행과정에서 단식, 철야, 묵언을 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참고 참아서 자기 인내의 한계에 다다를 때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딛듯이(百尺竿頭進一步)’ 한번 더 참아보면서 그 순간의 자기 욕망의 뿌리와 인내의 한계를 철저히 지켜보고 반성하여 깨달음으로써 욕망을 극복하여 자유롭고자 하는 고귀한 수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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