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불어 사는 세상> ‘야행성 아이들’

2004-06-0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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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 김진태

야― 어서 일어나지 못해? 또 지각하겠어. 아이구 내가 못살아. 저게 누굴 닮아 저렇게 게을러 터졌어? 순간 눈이 마주친 남편의 얼굴은 꾀나 멀쓱해 지고 만다. 아이들이 자라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하면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TV는 보통 아이들 방에는 없지만 컴퓨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른돌도 한번 빠지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매달리게 되는 컴퓨터를 아이들이 절제 있게 시간 맞추어 끝내리라는 바램은 아예 희망사항으로 끝내는 게 좋겠다.
아침마다 아이들과의 전쟁은 빨리 끝낼 수 록 좋다. 잔소리도 하루·이틀 아니고 점점 길어지면 아이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가 되어버린다. 시간만 되면 레코드판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잔소리는 전혀 약발이 받지 않는다. 한 두 번 지각해서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약간의 망신도 경험하게 내버려 두자. 윗사람들의 말로 터득하는 것과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터득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려운 일을 체험해서 얻은 결과는 일생을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지만 얻어들어서 아는 일은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리고 만다. 아이들을 다 키워 놓으신 분들은 다 경험한 일이겠지만 어려서 말을 잘 안 듣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스스로 달라지는 모습에 속으로 감격한 적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두 번 한 얘기는 그만 두는 게 현명하다. 스스로 경험을 하면 부모의 잔소리가 이유있었음을 자각한다. 계속 잔소리가 이어지면 나중에는 아침 늦잠에 직장까지 지각하는 사태까지 생긴다. 학교 지각이야 훈계로 끝날 수 있지만 직장에서 지각이 계속되면 정말로 불행한 사태가 생긴다. 아이들에게 훈계를 할 때는 절대로 하느님이 된 듯한 태도는 버리자.
우리― 부모들도 그들과 똑같은 청소년기를 지나며 우리네 부모 속을 썩이지 않았던가?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한 밤의 음악편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고국의 밤하늘엔 잠 못이루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리는 ‘래디오’ 옆에서 온 밤을 하얗게 지샌 경험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미국에 유학 와서 입학한 사진대학 ‘오리엔이션’하는 날, 선생님 한 분이 학교의 ‘모토’라고 보여준 문구는 나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Learn by Doing, Learn by Mistake 하면서 배운다. 그건 말되네. 그런데 실수하며 배운다? 이건 좀 이상하네. 항상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우리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미국식 교육이 정말로 벅찼다. 아니나 다를까? 매주 부과하는 숙제는 촬영기법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해놔라’다. 예를 들면 해가 쨍쨍한 한 낮에 촬영을 하여 ‘달밤의 사진’을 만들어 오라 등이다. 그당시 클래스 학생 전체가 일주일간 해법을 찾느라고 갖은 고생을 하며 헤매던 얘기는 졸업식 날 학생들 대화에 단연 ‘톱’이었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그런 고생 끝에 터득한 지식은 일생을 머리 속에 지니게 된다.
그 옛날 우리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잔소리가 우리가 지금 자녀들에게 하는 잔소리다. 말 한마디로 달라지는 아이들이 있다지만 동화 속의 아이들은 흔치않다. 저희들 스스로 깨달아 개척하는 저희들의 길만이 그들의 앞날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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