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실 홍실의 꿈

2004-04-27 (화) 12:00:00
크게 작게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참, 우리 조카 결혼식 그만 두기로 했어요.”
“어머, 그게 무슨 소리예요. 곧 결혼할 거하고 했잖아요.”
“알아요, 나 참 기막혀. 누구는 아들 없나. 무슨 예단을 그렇게 많이 요구해. 거기다 한국에서 오는 신랑 친척들 6명의 호텔비와 관광까지 맡으라니. 자식 키위서 한밑천 잡으려나 봐요.”
“아니 미국에서 다른 것은 다 미국식으로 하면서 왜 이 나쁜 풍습은 없어지지 않나요.”
크리스티(현주) 이모님과의 대화였다.
인륜지 대사라는 결혼식이 아무리 간단히 한다고 해도 식 자체 비용만 해도 엄청난데 아무리 간소히 한다고 해도, 아이들 학비 오래동안 내고 조금 모아두었던 돈 마저 결혼식에 다 써서 이제는 빈털털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다.
물론 힘들고 고생해 번 돈인 것 알아서 부모를 설득해 부담 없이 결혼식을 홀리는 현명한 사람들도 많다.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일이 하나 있다. 지금도 전혀 바뀌어지지 않고 있다는, 부담스런 혼수 때문에 잃어버린 나의 친구.
언니 둘,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았지만 모두 노력해 대학을 마친 그 애는 성격이 여리고 남을 도와줄 줄 아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모병원에 약사로 근무하던 그 애는 내가 미국 온 이후로는 편지로 연락했는데 집안이 무척 좋은 의사와 결혼한다고 무척 행복해 했었다.
그런데 1년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인가 소식이 끊어지고 다른 친구의 편지가 왔다. 그 애가 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고. 이유는 눈만 뜨면 시어머니와 남편이 어느 집 의사 아들 며느리는 열쇠를 몇 개 가지고 왔느니, 어떠니 로 시작해서 성격이 맞지 않느니 하다 그 다음은 이혼 얘기로 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식구들이 몰아쳤으면 매일 울고 지냈다는데 바보같이 왜 거기서 나오지 못했나 지금도 화가 난다.
어떤 이유든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면 며느리는 심장병에 걸리고, 시어머니는 위장병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일단 결혼해 내 집 식구가 되면 내 자식이라 믿고 사랑해주면 안될까.
전쟁을 겪은 우리 부모님들의 물질집착은 그 시대로 충분하며 다음 세대는 천천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하나씩 이루어가는 즐거움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다.
어차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태어날 때부터 한 쪽의 짝사랑이라서 항상 제일 좋은 것,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너무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에서 그들의 청실 홍실의 아름다운 꿈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함께 도와주어야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