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인생대역전

2004-04-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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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성실하게 제과점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매주 로또복권을 산다. 로또가 당첨이 되면 미국에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만나러 가는 편이 더 빨리 친구를 볼 수 있는 방법이지 싶다. 내 친구같이 근실한 친구도 인생 대박의 꿈을 꾼다. 내 친구뿐만 아니라 로또복권의 당첨금 액수와 인터넷에 로또동아리가 활성인 것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로또의 꿈에 동참하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우리들이 꿈꾸는 인생대역전의 꿈은 동화책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들은 신데렐라를 꿈꾸며 언젠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그 뒤로 무지무지 행복하게 인생을 살았다는 꿈을 꾼다. 어른이 되서는 왕자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뵈지 않는 천연기념물이란 걸 알게되면서 소녀들은 왕자님을 꿈꾸는 대신 아파트 분양권이나 주식시장에 눈을 번뜩인다. 남보다 빠르게 그것도 한번에 근사하게 살고싶다는 욕구가 열병처럼 모두에게 퍼져있는 거 같다. 더 이상 차근차근 아끼고 아껴도 서울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산다는 것이 달나라 가는 일 만큼 힘들어졌다.

성실한 소시민이 밝은 미래를 꿈꾸기엔 너무나 암울한 요소가 한국에 많다. 아마도 이런 불안 심리가 국민 모두가 열광하는 로또의 꿈에 불을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로또의 발행관청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부서가 발을 담그고 있다. 세금조달차원이라고는 하나 사행심을 조장하는 일에 정부가 발벗고 나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달뜬 국민의 불안정서를 누그러뜨리고 밝은 비전을 주기에 앞장서야할 정부가 먼저 주동이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말 한방이면 인생 막장에서 인생 대 역전의 화려한 팡파르가 울리게 되는 것일까?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며 복권 당첨자의 90프로 이상이 몇 년 이내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보고가 있었다. 인생 대 역전의 꿈이 로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시시해 보이던 남편이 왕자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며, 새벽에 일어나 좀 더 성실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이며, 절망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 시점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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