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어느 꽃 이야기
2004-03-16 (화) 12:00:00
김병덕<주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집들이하던 날 내가 좋아하던 분께서 작은 화분 하나를 사 오셨다. 서울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여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씨크라멘 이라는 꽃이다. 소담하게 피어있는 새빨간 꽃이 좀처럼 질 것 같이 않더니 꽃은 꽃이라 이내 마르고 시들어버렸다. 행여 다시 필까 정성을 드려 가꾸어 보았으나 몇 장 안 되는 잎사귀 마저 시들거리더니 그나마 다 떨어지고 말았다. 내다 버리려고 집어 들었다가 흙 위로 나와 있는 둥근 뿌리가 애처롭게 물을 찾는 것 같아 한 옆 구석에 놔두고 이따금씩 물을 주며 죽었니 살았니 하며 물어보곤 했다. 살아가면서 예쁜 화분들이 여러 개가 더 생겨서 작은 베란다가 비좁아 졌지만 사랑하는 분의 선물이기도 하고 이 땅에서 처음 가져본 꽃 화분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피어나기만을 바랬다.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이라곤 없던 이 땅에서 사람 사귀기보다 먼저 시작한 일이 화초 가꾸기라서 그런지 나의 화초 사랑은 유별나서 꽃 하나하나 에게 이름을 부쳐주고 답답할 때나 외로울 때 수도 없이 말을 건네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물을 줄 때도 시든 꽃잎들을 아플 새 라 조심스레 따주며 햇빛을 쫓아 이리저리 여행도 시켜주고 함께 음악을 들으며 좋은 친구인 냥 사랑을 키운다. 꽃 또한 어김없이 반응하여서 죽은 줄만 알았던 이 화분도 어느새 조그만 잎새들을 내 보내어 살아 있음을 알려주더니 하루가 다르게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꽃이 피리라는 기대는 감히 하지도 못하고 잎사귀로 만족해하며 고마워 했는데 지난 주일에 보니 잎사귀 가운데 조금 다른 모양과 색깔로 돌돌 말려있는 무엇인가가 열매처럼 조랑조랑 달려 있었다. 가만히 드려 다 보니 잎 속에 파묻혀 있는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달린 그것들이 모두가 꽃망울 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은 꽃 망울들이 유별난 늦추위를 헤치고 나오느라 힘이 들었는지 고개 떨구고 살며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폭풍이 오고 날씨가 최악이라고 사방에서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렸던 바로 그때 나의 꽃 친구는 축복처럼 많은 꽃들을 한꺼번에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보살펴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4년 만에 다시 피어난 꽃. 아끼고 기다리는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예쁜 색깔로 기쁨을 나타낸 꽃. 나는 이 꽃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믿고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믿음이나 기다림은 생명이 있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천하의 작은 식물도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피는데 둥근 뿌리만 남아 메말라 있는 나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물을 주며 기다려준 이들을 위해 나는 무슨 꽃을 어떻게 꽃을 피우고 있나 생각해 본다. 꽃나무는 뿌리가 자라는 것도 중요하고, 잎이 무성하게 퍼지는 것도 아름답지만 꽃을 피워야만 진짜 꽃나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