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사랑하는가

2004-02-12 (목) 12:00:00
크게 작게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살아가면서 물어보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왜 사랑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이는 마치 나는 왜 사는 것일까 하는 질문처럼 무모한 짓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서 어느새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끝없이 애타게 한다. 실로 사랑하기 위하여 산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사랑이 없는 삶이란 벌써 죽은 삶이라고도 한다. 말로 하면 사랑은 속삭이듯 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향내를 내고, 때로는 힘찬 용기와 벅찬 감격을 가져온다.
어릴 때는 꿈속에서, 조금 자라서는 사진에 새기고, 더욱 자라서는 애꿎게 따라 나서는 욕망에 자신을 던진다. 그래서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물불을 가릴 수 없는 돌아설 수 없는 길을 간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삶을 익힌다. 또 살아가면서 사랑을 삭인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고, 사랑할 수 없어서도 죽는다. 어떻게든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해야 하는 건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을 4단계로 나누면, 10세에서부터 20세의 육체에 탐닉하는 육적인 사랑을 지나서, 30세에서 40세의 물질적인 사랑을, 50세, 60세에 이르면 정신적인 사랑을 함몰하게 되고, 60세를 지나면 신적인 사랑에 몰두하게 된다.
나는 사랑을 전봇대로 본다. 싱싱하게 자란 나무는 잘리어 길가에 세워지고 그 위에 길고 긴 전선을 만년 머리에 이고 세상을 살아간다. 전선은 밝고 따뜻한 불을 싣고 간다. 옆집으로 이웃으로 멀리멀리 간다. 비바람과 폭풍으로 허리가 휘고 나뒹굴어 저도 전선을 버티어 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십자가 모습을 한 전봇대를 눈여겨 보아왔다. 배워 가는 성경에 쓰여진 나사렛 청년이 피 흘리며 매달렸던 그 십자가를. 그의 못자국에 새겨진 사랑이라는 또렷한 두 글자를. 사랑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웃과의 담을 헐고 가지 않나.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