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뷰티 살롱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미장원 주인인 애밀리아가 나를 보고 “진, 내 발뒤꿈치가 이상하게 아프다”하며 그 큰 보라색 눈을 그믐날 하현달 같이 밑으로 깐다.
“네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서서 일을 하니 아프지, 다리도 좀 쉬게 해 줘야지” 그는 점심도 서서 먹는다. 점심이라야 독일제 작은 초콜릿 하나에 물을 절반 탄 티 한잔이다. 티를 사오면 절반은 싱크에 부어버리고 물을 타서 마신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돌아가는데 저와 내가 잠깐 짬이 나자 “진 이리 좀 와봐”하며 내 유니폼을 잡으며 휴게실로 끌고 간다. 의자에 앉자마자 양말을 벗으며 “내 발꿈치 좀 봐줘, 상처가 났는지 꽤 아프네” 그가 엎드리며 발뒤꿈치를 내 코앞에 고추 세운다. 보니 상처 난 데가 없고 종기가 난 것도 안 보인다. “아무 것도 없다. 괜찮다.” “아니야 잘봐. 여기야 이 근처야, 아퍼 아퍼.”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에 보일 듯 말 듯 까만 점 하나가 보인다. “이거야? 여기가 아프냐?”하며 살짝 눌러보니 “아얏! 맞다 맞다 거기다 거기” 눈을 더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아마 머리카락 같은 것인 모양인데 다 들어가 버리고 점으로 외부에 남아있는 그것마저 살 속으로 방금 속 들어가 버리고 말 것 같은 자세다.
“애밀리아 이거 아마 머리카락 같다. 까만 색 머리카락 같다” 애밀리아는 노랑머리다.
“그래? 그럼 빼내 줘. 빼 낼 수 있겠나?”
“다 들어가 버리고 점뿐인데 어떻게 빼내노?”
“진, 좀 도와줘. 나 병원에 가기 싫어. 너 전에 병원에서 RN으로 일했다면서! 그때 경험 오늘 살려봐. Please.”
“나는 안과에서 일했지”
“아프다 소리 안 할게“하며 일어나 앉을 눈치는 없고 계속 플리즈만 연발한다. 이 바쁜 날.
내 속에 얼 떨 떨이가 찾아와 나를 갈마든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요 까만 점 애밀리아를 괴롭히는 요 사단 새끼 같은 요 까만 점 쏙 잘 빼내게 하시고 잘못되는 일이 있더라도 도지지 않게 해주세요. 주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애밀리아는 예수를 안 믿는다.
어느 날 “진, 너 교회 돈 얼마 갖다바치노?”하고 묻는다.
“십분지 일 바치지”
“진, 너 땀흘리며 애써 일해 번 돈 그렇게 교회 다 바치나. 그럴 필요 없어요. 일주일에 일불씩만 내면 돼요”하는 그 다.
어쩌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해보면 시간이 없다, 이다음에 교회 간다 하는 외곬이더니 오늘은 내가 기도를 시작하니 기도를 받는다. 급해서...
매니큐어 할 때 쓰는 기구들 중에서 제일 작고 뾰족한 가위와 집게, 그리고 79% 알콜 또 밴디지를 갖다 놓고 먼저 알콜로 잘 닦고 또 닦은 다음 까만 점 둘레 살을 도려내는데 발뒤꿈치 살이 어찌나 두꺼운지 소가죽이다.
도려내기보다 그 둘레를 가위 끝으로 쑤시고 긁으니 소가죽이라도 조금씩 살이 뜯겨 나온다. 보일락 말락하던 점이 좀더 짙은 색깔이 되어 나타나자 그때 왼손으로 고름을 짜듯 까만 점을 밖으로 내밀면서 빈틈없이 머리카락과 집게의 방향 각도를 잘 맞추어 꽉 집어 손에 힘을 주어 쑥 뺐는데 보니 집게 끝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집게로 그 점을 집을 때 짐작으로 집었지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가위로 다시 살을 쑤시고 긁어내자 좀더 주먹을 내민 까만 점을 달래듯 곱게 집어 천천히 잡아 빼내니 내가 보는데서 딸려 나온다.
속에 들어가 있던 머리카락이 거의 반 인치 이상이나 긴 것에 우리 모두 깜짝 놀라버렸다. 극히 작던 점에 비하면 몇 십 배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리고 가늘고 흐느적거리는 머리카락 한 알이 무슨 수로 소가죽 살을 직선으로 뚫고 들어 갈 수가 있었을까.
사람을 광물성이라고 하는데 콧김에라도 날려 갈 하찮은 것이 철사줄 같이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 수 만 개의 머리카락이 빼곡이 터를 잡고 자라며 우리 두피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고 있다. 부드러운 철 모자를 쓰고있는 셈이다. 은혜의 걸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