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 찬가

2003-12-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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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민교 <리치몬드, 소아정신과 의사 >

겨울은 고독하게 왔다. 숲나무는 이미 헐벗고 있었다. 달린 잎들이 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리며 매달리고 있다. 땅은 말라서 옅은 갈색이 되어 갔다.
벽 구석에 걸려있는 원주민의 주름진 얼굴과 빈 그릇을 들고 있는 앙상한 아비의 모습이 겨울을 담고 있기라도 마음이 시려온다. 새벽 95의 뒷길 워렌턴은 적막한 채 온통 눈에 파묻혀 흰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높고 높은 해는 새파란 하늘을 뚫고 눈 위로 쏟아져내려 온 천지를 은구슬을 꿰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삼촌은 건강한 모습이 되어 제일 늦게 공항 세관 문을 열고 나왔다. 시커먼 얼굴이 다 벗겨져서 새 모습이 되어 왔다. 극진한 형제들의 사랑과 새로운 치료방법이 성공한 것이다. 미국 의사들이 지나치게 센 약을 써서 오히려 몸이 쇠약해졌었다는 전갈도 함께 왔다.
돌아오는 길도 눈은 녹지 않고 따스한 햇살에 잘 견디고 있었다. 붉은 흙이 까불러져서 흰 눈길을 망치고 있었다. 뜸뜸이 보이는 것은 젖소가 눈 덮인 목장을 지키고 있었다. 곳곳에서 가지에 얹힌 흰눈이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내내 텅빈 마음이 이 활짝 열린 흰 나라에 속속 빨려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외로움을 타는 것일까. 겨울은 타는 것일까. 겨울밤은 더욱 찬 공기를 뿌리면서 재빨리 어두워만 간다.
둘째가 몸이 비쩍 말라서 대학에서 돌아왔다. 3주나 독감으로 아파서 힘들었다고 하는데 늘상 아버지의 역할에 게을러 왔음을 뼈아프게 느끼지만 별도리가 없다. 겨울 한 달에 한번 편지를 썼다는 것은 그저 겉치레에만 그치고 말았다. 좀더 자상하게 전화라도 주었어야 하는 건데 집에 와서 쿨쿨 잠든 것을 보며 애처로와 별로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다.
며칠 날이 궂고 비가 와서 뛰지 못했는데 오늘 일찍 운동장으로 나갔다. 팽팽하던 하늘이 슬그머니 어두운 회색으로 변하더니 흰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첫눈이다. 세 아이가 학교 교실을 박차고 나와서 환성을 지르며 운동장을 펄쩍펄쩍 뛰고 있다.
아차 시계를 차지 않았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걱정이 됐지만 옆으로 흰줄을 그리며 날리는 눈발을 맞대고 계속 뛰어갔다. 삶이 바로 이런 것이지 하는 되새김이 일고 있었다.
거친 바람과 눈보라가 쳐도 가야할 길은 가야 하는 것이다.
시계가 돈처럼 귀한 때가 있었다. 길거리를 가다가 불쌍한 사람을 만나서 시계를 덥석 쥐어준 것이다. 저당을 잡히는 일도 자주 해냈다. 집 식구의 시계가 하나씩 사라져 가기도 했다. 지금 차고 있는 시계가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이 든다.
눈보라 속에서 나의 시계는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 생각을 멈추면 고독감을 덜 수 있을까. 생각은 멈출 수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집념은 병을 만들 수도 있지. 안다는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하지만 부지런히 살려면 여유가 생긴단 말인가?
절기가 오면 더 바빠지지 않나 말일세, 선물 준비하랴 인사 차리랴.
바깥뜰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면서 감기가 걸려서 콜록 콜록 하면서도 겨울을 당해낸다. 시러운 인심이지만 참아야 한다. 내가 따뜻해야 한다. 내가 먼저 뜨거워 져져야한다. 잊혀졌던 마굿간을 만들고 구유에 아기예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야겠는데... 기요자라 모사라. 그분을 잊었기 때문에 이렇게 겨울은 춥기만 했구나.
눈발은 간간이 내리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눈을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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