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리스마스 기억의 메들리

2003-12-2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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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상/수필가

나의 크리스마스 기억은 피난 내려가 자란 공주에서의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큰길가 라디오 방 확성기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펴져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집안 청소도 군소리 없이 하고, 다급해지면 심부름을 자청해서 어머니로부터 착한 어린이로 눈 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성탄 아침 머리맡에 성에 차지는 않아도 선물 하나가 놓여 있게 된다.
그러나 조숙한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으로 선물을 공수해 오는 것은 거짓임을 알려주었을 때, 남자들의 목젖은 이브가 준 사과가 죄스러워 목에 걸린 거라고 알고 있다가 그게 아님을 안 뒤는 그지없이 허무한 것이었다.
아무튼 산타할아버지가 가짜라는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그 해부터는 선물이 놓여 있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요구사항을 적어 보내는 편지가 우체국에 쌓여 골머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산타 선물의 실망을 털고 내게 재기(?)할 기회를 준 것은 성탄 카드였다. 초등학교 성적표 비고란에는 선생님이 너무 그림을 그린다 라고 적어 보냈다. 정말 그 때는 산수시간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그림을 그렸다. 성탄시기가 되면 밤이 깊도록 카드를, 주로 흑백으로 눈 덮인 숲 속의 서구식 헛간을 그렸다. 인적 없음이 좋다며 사범학교에 다니던 이모, 이종사촌 누나, 사범대학생 외삼촌, 외갓집에 하숙하는 학생들까지 그 카드를 헐값에 사갔다. 결국 두 번째 성탄 추억은 경제적 소득과 따뜻한 방에서 미지의 세계를 그린 기쁨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성탄 전날 초저녁부터 손님 없는 대중탕에 찾아가 뜨거운 물 위로 목만 내놓고 있었다. 자정 미사시간까지 몸의 때뿐만 아닌 마음의 것까지 씻어내는 청결 의례다. 무엇보다도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의 동요를 자제하는 방법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때는 거리에서 여학생과 얘기만 나누어도 정학처분, 성당에서도 프랑스 신부님은 여학생들을 오래 쳐다만 보아도 혼을 내셨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과 비밀 결사대처럼 사범학교 여학생들과 독서회를 만들었다. 일주일마다 약속된 장소에 읽은 책을 가져다주고 다음 책을 가져왔다. 방학시기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가 되어서야 같이 모여 독후감을 나누었는데, 그녀들은 교육대학이 생기기 전 마지막 사범학생들, 그녀들은 어찌나 똑똑한지 이성에 대한 동요보다는 긴장감이 앞서는 모임이었다. 그때 수확은 독서의 편식에서 벗어남과 정신세계와의 어렴풋한 만남이었다.
대학시절 명동성당 합창단에 들어간 이유 중 하나가 여학생들과 만나고 싶어서였다. 길에서는 말도 걸지 못하게 쌀쌀맞던 그녀들이 친절하고 다감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지금도 꿈속에서처럼 기억된다. 군 시절, 이맘때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총각 소위들, 스케이트 행렬이 홍천강 얼음 위를 질주했었다. 깊은 밤, 찬바람을 타고 강이 우는 소리, 소복한 여인처럼 푸른 달빛이 내려앉는 소리, 그러나 그 시절에는 젊음과 외로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몰랐었다.
끝없이 잔잔한 성탄 추억들은 삶의 흔적이다. 그 흔적들과의 교감은 행복이기도 하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기억들은 그 날이 생일인 분이 직접 산타클로스가 되어 우리에게 주는 선물처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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