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에서 제일 큰누나

2002-04-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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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어제 외출에서 돌아와서 현관으로 향한 층계를 아내와 함께 올라가면서 있었던 일이다. 아내는 현관 옆에 시들해진 꽃을 보고는 손가락을 화분 속에 넣으면서 "이 꽃이 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의 의미를 나는 알기에 "왜 당신이 물 좀 주지 그래?" 하고 물었다. 아내는 웃으면서,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는 당연히 큰누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어난 순서가 개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보면 누가 맏이이고 누가 막내라는 것을 묻지 않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난 순서에 따라 사람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맏이는 진지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성취욕이 강하다든지. 막내는 느슨하고 유머스럽고 책임감이 덜하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다.

나의 아내는 여섯 형제 중 맏이이다. 나는 여섯 형제 중에 다섯째이니까 막내나 마찬가지이다. 여섯 형제 중에 다섯번째인 나는 항상 누나들과 형의 작은 동생이었다. 누나들이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옷을 입혀주며 돌보아 주었고, 형은 동네아이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여 주었다. 부모님 역시 여러 자녀들을 키운 경력으로 늦게 태어난 나와 동생을 느슨하게 키웠던 것 같다. 나서서 책임을 질 만한 일이 없었다.


아내는 첫번째 딸로 태어나서 나와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에 맏딸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책임이 있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동생들을 돌보며 동생들의 부모가 되었다. 그녀는 타고난 지도자인 데다가 맏이로서 동생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여서인지 책임감이 강하며 모든 일에 진지하다.

결혼 초기에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맏이와 막내의 성격이 우리들의 결혼생활을 오랜 세월 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만약에 우리 둘 다 맏이 성격을 가졌다면 서로가 상대방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상대를 이끌려고 하면서 충돌이 잦았을 것이다. 잦은 충돌을 문화충돌로 생각하고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둘 다 막내 성격을 가졌다면 태평하게 살면서 삶의 진전이 없었을 것이다.

평생 반려자로서 나와 아내는 맏이와 막내의 특성을 서로 보충해 가면서 산다.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행진하는 아내에게 가끔 꽃 냄새를 맡고 쉬어가자고 하는 막내의 느슨함이 없다면 아내의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목표를 정해 놓고 행진하는 맏이의 책임감 있는 권고가 없었다면 태평해지기 쉬운 막내의 인생에서 무엇을 얼마나 성취하였을까.

’세상에서 가장 큰누나’라고 식구들은 아내에게 농담한다. 두 사람이 논쟁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세상에서 큰누나는 "그 남자는 이렇게 하고 그 여자는 저렇게 하면 돼. 문제 해결 끝" 하고 판결을 내린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큰누나는 적절한 해결책을 구상해 낸다. 세상이 그녀의 말을 듣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텐데…

오랜 세월동안 아내가 큰누나로서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내의 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며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려 본다. 아내가 ‘잔소리’ 한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말이 너무 지혜롭다. 그녀가 하는 말이 남을 야단치기 위한 것은 더욱이 아니다. 그렇다고 ‘충고’라고 표현하기에도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꽃나무에 물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말은 충고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누나의 입장에서 아내는 ‘지적’ (point out)하는 것이다. 나와 나의 두 아들에게 그녀는 많은 것들을 지적하여 준다. 그녀의 동생들에게도 지적하여 주고,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누구든지 그녀의 지적을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지적한다.

아내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정 반대이다. 만약에 첫째 딸의 책임감 있는 행진 구호가 없었다면 아마 독자들은 게으른 막내아들의 이러한 생각을 글을 통하여 읽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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