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2001년 1월 말 샌프란시코에 사는 다이앤 위플은 샤핑봉지를 안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섰다. 바로 그 순간 위플은 덩치 큰 도사견 한 쌍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마조리 놀러와 마주쳤다. 도사견들을 보는 순간 위플은 질겁을 했다. 전에도 한번 이들 개 때문에 혼난 경험이 있었던 위플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순간 개들은 삽시간에 다이앤 위플을 덮쳐 온몸을 물어뜯었다. 불과 몇분 사이에 일어난 이 참사로 그녀는 다섯 시간만에 숨졌다. 놀러와 그의 남편 로버트 노엘은 참혹한 죽음을 애도하고 자숙하기는커녕, 미디어에 나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들의 태도에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검찰은 마조리 놀러를 과실치사(Involuntary Manslaughter)와 2급 살인죄(Second Degree Murder)로, 그리고 남편 노엘은 과실치사로 각각 입건했다. 2급 살인죄는 살해의사를 가지고 사람을 죽였을 때 적용되며 15년형에서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다. 한편 과실치사는 피고의 태만으로 사람이 숨졌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이때 과실이란 단순과실이 아닌 상당한 과실이어야 한다. 이들 부부는 이미 수십 차례 주변 사람들이 덩치 큰 도사견에 질겁을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에서 살해의사가 유추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세론의 관심을 모았던 이 사건은 여론의 편견을 피해 LA로 옮겨 재판이 진행된 결과 지난 3월21일 배심원들은 사고 당시 개를 데리고 있던 놀러에게 적용된 과실치사와 2급 살인죄를, 그리고 사고 당시에 현장에 없었던 남편에게는 과실치사죄를 인정하는 평결을 내렸다.
상소 가능성
노엘과 놀러 부부는 상소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실 이 케이스는 몇 가지 점에서 상소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첫째, 변호사가 효과적인 변론을 하지 못했다. 법정에서 사고 현장을 극적으로 묘사한다면 법정을 기어다니는 기행을 연출했던 피고측 변호인의 변론이 효과적이지 않았다. 둘째, 피고에게 매우 불리한 증거와 진술이 피고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검찰은 피고들이 도사견들과 수간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은 설사 증언으로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지나치게 커 일반적으로 제외된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재판부가 허용한 것이다. 셋째, 2급 살인이면 2급 살인이지, 2급 살인에 과실치사를 더해 평결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 주인의 책임
개가 사람을 물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느냐는 주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개 개가 사람을 물었다면 개 주인이 책임을 진다. 개 주인이 설사 관련법을 잘 지켰고, 누가 보아도 개 관리를 잘했더라도, 그리고 개가 사람을 물지 또는 물지 않을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을 백번 입증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개 주인이 부주의하지 않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쳐야 한다. 개가 처음 사람을 물었을 때는 개 주인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고전적인 개 책임론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다수 주에서는 설자리가 없다. 물론 개 주인이 책임을 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가령,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갔다가 개에게 물린 경우, 개를 치료하던 수의사가 개에 물렸을 때, 범죄를 저지르다 개에 물린 경우, 피해자가 개를 자극한 결과 물렸을 때. 경찰의 수사견에게 물렸을 때가 바로 그런 예이다.
개가 사람을 물어 중상 내지 사망의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샌프란시스코 케이스처럼 심하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이 때 처벌의 기준은 개 주인이 개가 사나워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시에 실제로 개 주인이 개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일어났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건물주의 책임
건물주는 자신이 소유한 건물의 세입자가 개를 갖고 있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각 장애자나 청각 장애자 등 장애인을 돕는 개는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개를 가질 수 없다고 정했다면, 개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애자의 입주를 거부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건물주가 세입자가 가지고 있는 개가 매우 사납다는 것을 알았고, 건물주가 원하면 개를 더 이상 건물에 있지 못하게 할 권리가 있는 상황에서 개가 인명을 살상했다면 건물주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