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눠먹기식 담합은 안된다

2002-03-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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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한인회장 후보단일화 괜찮은가

▶ 박봉현(편집위원)

오는 4월 1일 LA한인회장 후보등록 개시일을 앞두고 일부 예비후보들간에 단일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들이 아직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진 않았지만 일부에선 후보 단일화 시도가 한인회의 요직을 나눠 먹으려는 부당한 담합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5월에 있을 한인회장 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힌 예비후보 3명이 지난 14일 한인타운 내 래디슨 윌셔 플라자호텔에서 한자리했다. 후보 단일화에 대한 화두를 시작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이어 19일 뉴서울호텔에서 두 번째 회동이 있었다. 이들은 21일에도 만나 후보단일화를 전제로 한인회 이사의 수 배정을 놓고 논의했다. ‘자기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심으려는 일종의 자존심 겨루기였다.


후보들간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종식되지 않아 28일 현재 후보단일화가 성사된 것은 아니다. 한 후보가 최근 서울로 출장을 가기 전에 자신의 측근에게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으니 선거준비를 지속하라”고 지시한 것을 보아도 단일화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이슈’도 아니다.

단일화를 꾀하는 이들의 주된 명분은 ‘금권선거’ ‘부정선거’ 시비로 한인사회가 분열될 것을 우려해서란다. 실제 전례가 있으니 나름대로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대표는 그 구성원들이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직선이든 간선이든 유권자들의 생각하는 바가 투표과정에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권선거나 부정선거 부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에서도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민의를 반영하려 하는데 민주주의 모델이랄 수 있는 미국에 사는 우리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으려 한다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단일화에 들이는 힘을 비축해 두었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치르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한 후보는 ‘개인사정’ 때문에 치열한 선거캠페인을 견뎌내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단일화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감안하면 무슨 일이 있든 선거에 나서야 하고 분명한 청사진을 공개해야 한다.

만일 역부족이라면 출마를 포기하고 지지자들에게 다른 인물을 추천토록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이 상황에서 계속 단일화에 미련을 두고 있다면 당당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단일화 추진세력은 “세 후보가 모두 이길 수 있는 방향이 단일화”라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권자들은 세 후보 개개인의 승패에는 관심이 없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자를 고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패배한 후보가 받는 상처까지 유권자들이 책임져야하겠는가. 세 후보가 모두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가 승리하는 멋진 승부와 결과에 대한 승복이 중요한 것이다.

후보단일화 시도에는 금전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한인회장 선거규정에 따르면 후보는 공탁금 3만달러, 기탁금 3만달러 등 총 6만달러를 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이 가운데 기탁금 3만달러는 돌려 받을 수 있지만 이번 선거부터는 규정이 변경돼 기탁금마저도 선거 비용으로 전용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니 선거에 패하면 최악의 경우 6만달러를 몽땅 날릴 수 있는 것이다.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 두 예비후보는 각각 6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 돈을 내지 않는다면 무어라 꼬집을 수 없다. 문제는 이들이 단일화를 통해 한인회의 핵심 자리를 나눠 갖는 담합을 꾀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일각에선 이들 세 사람이 회장, 수석부회장, 이사회 요직 등을 갈라먹는 방안이 거론됐다는 데 대해 분개하는 목소리가 높다. 돈 안들이고 한인회에 한자리 차지하려는,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풀기’를 꿈꾼다면 지금 당장 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울러 외부세력이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후보 단일화 담합을 독려하거나 조장해서도 안될 일이다. 역대 한인회장 선거에서 심심지 않게 보아온 터이다. 이뿐 아니다. 누구든 야합으로 회장이 된 사람은 한인회 운영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할 소지가 다분하다.

커뮤니티의 주요 현안을 다룰 때도 투명한 방식보다는 몇몇이 은밀히 모여 결정하고 처리하는 ‘밀실 운영’이 고착돼 결국 한인사회에 좋지 못한 일들을 잉태할 수 있다.

물론 후보단일화 자체를 무턱대고 경원시할 필요는 없다.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뜻맞는 일부 후보들이 한 후보를 밀어주는 것은 보기에 따라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물러선 후보들이 ‘떡고물’을 노려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전제를 한다.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다른 것’을 원하거나 내략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지금껏 한인회에서 후보등록 용지를 가져간 사람들은 단일화 세력 외에 몇 명 더 있다고 하니 이들이 단일화 쪽에 기웃거릴 법도 하다.

실제 한 예비후보는 단일화 움직임 소식을 듣고는 “나도 동참하면 한자리 줄 수 있느냐”며 의사를 타진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심하면 후보의사만 비쳐도 ‘감투’를 쓸 수 있다는 그릇된 관행을 낳게 된다.

한 사람이 단일후보로 등록돼 무투표 당선이 되더라도 다른 예비후보들은 한인회에 얼굴을 내밀려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진정한 후보단일화이며, 유권자들은 투표기회를 놓쳐 아쉽긴 하겠지만 이해는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한인사회의 반대에 아랑곳 않고 담합이 이뤄지고 자기들끼리 한인회를 ‘분할 점령’하거나 차기, 차차기에 돌아가면서 한인회장직을 할 요량이라면 커뮤니티 대소사에 다른 단체들과의 공조도 깨지고 불협화음만 거세질 것이다. 한인들의 냉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번 한인회장 선거는 10여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직접선거에는 각종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이를 최소화하는 공동노력을 기울이면서 간직해야 할 것이다.

한인회장은 유권자들이 뽑아야 한다. 냄새나는 단일화 움직임에서 손을 떼고 비전을 제시하며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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