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자 조이기’ 안 된다

2002-03-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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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리처드 본드/LA타임스 기고

반이민정책 지지자들이 ‘9·11’ 이후 목청을 돋우고 있다. 여론이 고조되고 법 집행이 깐깐해지고 관련 입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현명한 반응이랄 수는 있다. 하지만 테러사건을 빌미로 장차 이 나라에 들어올 이민자들에게 문을 닫거나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약 800만명의 불법체류자의 문제를 닫힌 마음으로 풀려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처사다.

반이민정책은 캘리포니아의 프로포지션 187에서 나타났듯 많은 공화당원들이 좋아하는 전술이다. 그때도 그러나 부시와 의회 공화당 지도자들은 이 같은 수구주의적 흐름을 적절히 돌려놓았다. 특히 부시는 ‘9·11’ 이후 불법체류자 체류 연장을 골자로 하는 245(i) 비자연장을 지지하고 빈센트 폭스 멕시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국경봉쇄 및 불법체류자 대량추방 등 일련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었다. 부시와 폭스 대통령은 멕시코인에 방문노동자 신분으로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현 시점에서 이민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법 월경을 줄이고, 미국에서 세금 내며 열심히 일하는 불법체류자들에게 합법체류 신분을 부여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법망의 허점을 악용하는 자들은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팻 뷰캐넌과 같은 공화당 말썽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민자들을 고립시킨다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부모의 선택으로 선택권 없이 미국에 와 불법체류 신분이 된 자녀들이 주법과 연방법에 의해 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크리스 캐넌 연방하원의원(공화)이 최근 제안한 학생조정 법안은 이들 자녀들에게 균등한 교육기회를 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UC계가 이들이 다른 주민들과 동등하게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캐넌의 법안은 주정부가 지원하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며 건실하게 생활하는 고교생들이 시민권을 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정부가 재정 지원하는 공립학교를 졸업할 수는 있지만 평생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어둡게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의해 이곳에 왔고 이곳에서 자랐다. 대학에 가고 싶지만 유학생이나 타주 학생에 적용되는 비싼 등록금을 충당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반이민정책은 주와 연방 차원에서 공화당에 큰 정치적 손실을 입혔다. 캘리포니아에서의 대선과 주지사 선거에서의 득표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 96년 밥 돌은 38%, 98년 댄 렁그렌은 38%, 2000년 조지 W. 부시는 40%를 각각 얻었다. 이 기간에 캘리포니아 공화당은 연방의회 3석, 주상원 2석과 주하원 5석을 잃었다.

지난 10년간 캘리포니아에서는 라티노가 300만명, 아시안이 100만명이나 증가했지만 캘리포니아 공화당은 이들 이민자 그룹에 어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지금 당과 나라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수백만명의 성실한 노동자들을 대략 추방하자는 폐쇄적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불법체류자들이 이 사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이들에게 합법체류 신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따를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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