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테러희생자 유족의 탐욕

2002-01-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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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잔 발자르/LA타임스 기고

테러희생자의 유족들에게 백만달러가 넘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은 웬지 지나치다는 생각이 지원지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백만장자가 없다. 혹 백만장자가 있더라도 티를 내는 사람이 없는 동네이다. 로토 당첨 이외엔 백만장자가 될 것을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2000년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중간 연소득이 4만2,148달러이다. 정부는 테러희생자 유족들에게 평균 16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에 대한 세금은 없다. 이 돈을 연이율 5%의 채권에 넣어 두면 매년 8만달러씩 영원히 받을 수 있다. 이자 또한 면세이니 일반 소득으로 따지면 10만달러에 해당한다. 게다가 원금 160만달러는 고스란히 남는다.

자선단체로 받은 지원금은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가정보다 약 2배나 많은 소득으로 은퇴 후에도 변함없는 재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바로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동정과 우정이란 대의명분 아래서 대다수 납세자들이 백만장자 그룹을 만들어 준 셈이다. 미국인들의 전례없는 관대함이 이같은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연방정부 관계자의 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월드트레이드센터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한 여성은 29세 된 남편을 테러로 잃고 두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테러 전에 연간 2만5,000달러를 벌었었다. 그런데 이 미망인은 160만달러는 너무 적다며, 자신뿐 아니라 두 자녀에게도 각각 100만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돼야 한다며 불평하고 있다. 욕심이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테러희생자 유족만이 이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다른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어떠한가? 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가? 아랍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살해된 미국인은 어떤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된 시민은 어떠한가? 모두 똑같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누구는 160만달러를 받고 누구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차별대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9·11’을 기점으로 무언가 특별한 구분을 지으려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뉴욕테러 이후 테러와 관계없이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이 약 3,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유족의 고통과 아픔이 테러희생자 유족의 그것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보상은 그렇지 못하다. 더욱이 테러희생자 유족에 대한 특별배려 때문에 자선단체들이 일반 범죄 등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에 대한 지원에 소홀히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테러 희생자 보상액이 총 6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미국민들이 21달러씩 갹출해 백만장자 그룹을 만들어 준 것과 매한가지다. 부당하게 가족을 잃었으나 별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슬픔 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훨씬 더 많다. 이같은 상황은 아무리 보아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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