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No 노스트라다무스’

2001-09-2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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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식으로 풀 수 없는 일을 만나면 비상식적으로 풀려드는 경향이 있다. 상상을 초월한 테러의 충격이 점차 가시자‘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했다’느니‘화염 속에 악마의 얼굴이 나타났다’느니 하는 종말론적 선정주의가 판치고 있다.

종말론의 원본으로 노스트라다무스, 파티마의 제 3 예언, 성경의 666표식 등이 자주 거론되고 한국의 정감록도 회자되지만 이들 예언이 공통적으로 겨냥한 말세의 해인 1999년, 2000년은 별 재앙 없이 지났고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다.

한마디로 이들은 예언이라기보다는‘뒷북치기 해설집’이다. 이번 뉴욕 테러가 비상식적인 전쟁 양상을 띄자 비상식적인 해설이 봇물을 이룬다.
무너져 내리는 무역센터의 화염 속에 사탄의 얼굴이 보였다거나, 노스트라다무스가 이 참사를 이미 수 백년 전에 예언했다는 주장은 비극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이번 테러는 기독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이며 세계 경찰을 자처해 온 미국에 반감을 가져온 일부 제3 세력의 도발이라는 논리적인 사실 파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종말론적 예언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른들은 대개 이들 예언을 가십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지만 청소년들은 생존의 의미를 잃고 운명론자가 될 위험성이 많다.

단편 시 형식으로 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은 수 세기동안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해석자에 따라 이어령 비어령 식으로 그럴듯하게 꿰 맞춰져 왔다.
또 다시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하면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은 다른 옷을 입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당한 세기적 비극을 엉뚱한 예언을 빌어 자포자기 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함께 모으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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