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니 이번 일요일(17일)에“Father’s Day(아버지 날)”라는 글씨가 보일 듯 말듯 삽입돼 있다.‘어머니 날’외에 아버지 날이 따로 있는지 조차 모르는 한인 아버지들이 많을 듯 싶다.
한국에선 원래 어머니 날만 있다가 아버지들이 처량해 보였던지 함께 뭉뚱그려‘어버이 날’(5월 8일)로 바꿨는데 미국인들은 어머니 날과 한달 남짓 간격을 두고 따로 아버지 날을 지키니 신통하다.
이런 배려가 매사에 공평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 탓인지, 아니면 효도선물을 한 번 더 팔아먹겠다는 장사꾼들의 농간 탓인지 아리송하지만 아버지 날이 어머니 날 만큼 보편화되지 못한 것만은 틀림없다.‘아버지 날 세일’광고도 별로 극성스럽지 않다.
아버지 날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불평할 생각은 없다. 엄부(嚴父), 자모(慈母)라는 말처럼 자식들에겐 젖 먹여 키워준 어머니가 더 애틋하게 마련이다. 또, 한국의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는 어머니 날을 빼고 나머지 364일이 모두 아버지 날이라는 항변에도 할 말은 없다.
문제는 요즘 아버지들이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마저 잃고 있다는 점이다. 밥벌이 담당자(bread earner)로서의 아버지 역할이 미국에서는 날이 갈수록 어머니에게 잠식당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한창 나이에 명퇴 당해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하는‘무능한 아버지’들이 많다.
아버지들이 권위를 잃고 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존경심이 줄어드는 판에 아버지 날이 빛을 낼 리가 없다. 물론 요즘에도 밥벌이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갖춘 당당한 가부장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들이 반드시 아버지 날의 표상은 아니다.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진정한 사랑이 밑받침 될 때 생긴다. 최근 미국 신문엔 교통사고로 고생하는 딸의 병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둔 아버지, 아들과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기 위해 휴가신청을 낸 아버지, 딸의 학비 마련을 위해‘투잡’을 뛰는 아버지들의 얘기가 실렸다. 자기가 그토록 원하던 특별한 물건을 우체부로부터 배달 받은 한 아들이 그것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에 주문했던 마지막 사랑의 선물임을 깨닫고 감동했다는 얘기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전엔 아버지가‘자식을 둔 결혼한 남자’로 정의돼 있다. 그러나 자식을 낳았다고 모두 아버지는 아니다. 가부장이라는 말 자체가 요즘 세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아버지, 친근한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다보면 가부장의 권위는 저절로 회복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아버지 날에는 모든 한인 아버지들이 자식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는 감격을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