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3월26일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이로서 김 대통령은 3년전 첫 조각 이후 열두번이나 대소개각을 단행한 셈이다. 김 대통령은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각종 국정 현안에 더 한층 노력하고 강력한 의지를 갖고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국정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이것이 이번 개각이 이루어진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망스럽다. 누군가 크게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국정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기 위해’라는 개각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개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단순한 국정 해결 발상은 순진하다 못해 의심이 앞선다.
국민의 신임을 얻는 것이 진정 염원이었다면 개각은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변경은 미지로의 진입을 의미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증대시키고 당연히 사회 안정을 해친다. 새로운 균형점으로 회귀하기까지 수많은 진통을 수반하며 불필요한 불안을 초래하게 됨은 당연하다. 가중된 불안이 어떤 식으로 신임 제고와 연결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잦은 개각은 자신 있는 정부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개각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는 한달 전쯤부터 특정 장관의 경질 낌새를 흘리기 시작한다. 언론은 일제히 그 장단에 맞춰 후임 물망에 자천타천으로 오른 인사들을 등장시키며 서커스를 연출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이처럼 비생산적이고 유치한 인선과정은 한국 정치의 한 풍물로 오래 전에 자리잡았다. 건국 56년이 되었으면 장관 경질쯤은 조용히 효과적으로 할 때가 됐다.
각료 바꿔치기를 통치술 만병통치약으로 그릇 인식하거나 지도력 발휘의 한 탈출구로 여기는 정권 아래서는 국민이 손해를 입는다. 개각의 당위성을 민심수습용, DJP공조유지용, 집권 후반기용, 정권 재창출용, 관료사회 경고용, 정면돌파용, 개혁추진용, 국정쇄신용 등등으로 포장한다면 구차스런 구실과 핑계일 뿐이다. 역대 정권이 개각을 타성적으로 악용해 온 증거는 도처에 있다. 국민기만형, 체면치레형, 책임전가형, 본말전도형, 시행착오형, 억지춘향형 등의 개각 행태는 즉각 종식돼야 한다.
미국은 인구 2억8천만명에 연간 국민 생산고가 10조달러 규모지만 연방정부 각료는 14명뿐이다. 클린턴 전대통령은 첫 임기 중 봉직했던 각료들이 국가에 봉사할 만큼 했으니 평민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청을 받아들여 재선 취임 때 8개부처 각료를 새로 임명한 것을 빼면 8년 재임기간 중 개각이 불과 두번뿐이었다. 그중 하나는 미미한 부정사건으로 기소된 농업부 장관을 바꾼 일이다.
김 대통령의 임기는 1년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전 각료가 함께 남아서 국사를 다룬다고 가정해도 긴 세월이 아니다. 지난 3년간 교육부 장관은 여섯 번, 산자부 장관은 다섯 번씩이나 갈렸다. 이처럼 평균 반년이 멀다하고 갈아치우는 풍토에서 정책의 혼선과 일관성 실종은 극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의 각료는 정부 수립초기의 12부처에서 지금은 19부처로 크게 늘었다. 미국보다도 장관 자리수가 5개나 더 많다. 한국은 인구 240만명에 각료 한사람 꼴이고 미국은 인구 2천만명에 하나 꼴이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양국간에 근 10배에 가까운 비중의 차이는 연구해 볼만한 과제로 보인다.
6개월간 바늘방석에 앉아보겠다고 잘 빼서 차려입고 임명장 받으려고 달려가는 신임 장관들의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까? 나는 항상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