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헐리는‘끄덕 다리’

2001-01-3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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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금순아, 어디 있느냐?...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인기 가수 현 인이 불러 크게 히트시켰던‘굳세어라, 금순아’라는 50년대 유행가의 노랫말이다. 1·4후퇴 때 월남한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그래서 많은 이산가족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전시 가요였다.

이 노래에 나오는 영도다리는 한국동란 직후 이산가족들로 날마다 북적댔다. 경황없이 피난길에 오른 북한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중도에서 헤어지게 될 경우 부산의‘끄덕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들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부산 명물이 반세기의 추억을 접는다. 국제도시로 탈바꿈한 부산의 폭증하는 교통량을 낡은 영도다리가 감당 못하자 부산시가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교량을 건설키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필자는 지난 12월 부산에서 열린 도시계획 관련 심포지엄에 초청 받아 갔다가 알았다. 주최측이 제시한 수송계획의 능률 측정과 문화 및 경제적 영향 분석을 검토하며 필자는 어린 시절 처음 봤던 영도다리를 머리에 떠올렸다.


일제 치하인 1931년, 부산 최초의 연육교로 세워진 214미터 길이의 영도다리는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중간 상판을 하루 두 차례 들어 올려‘끄덕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판의 상하작동에 각 5분, 선박통과에 5분 등 총 15분간 다리가 열리는 시간에는 구경꾼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휴전 후 다리 재개통식 때(1954)도 6만여명(당시 부산 인구는 20여만명)이 부산은 물론 밀양, 김해 등 인근 도시에서까지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후 영도다리는 관광 명소로서만이 아니라 산업단지와 주거지역을 잇는 순환동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왔고 수산 경제와 해양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금년 말께 완전 철거되면 시 당국은 그 자리에 현대식 6차선 교량을 2005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주변엔 제2 롯데월드 등 새로운 위락시설들이 다투어 들어설 조짐이다. 자갈치 시장과 국제시장 등 주변 명소들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돌아본 자갈치 시장은 예나 다름없이 풍요로웠다. 신선한 어물이 넘치는 먹거리 장터는 시애틀 명소인 퍼불릭 마켓이 무색할 정도였다. 상인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음악처럼 정겨웠고 필자가 옛날 살았던 초량동 집은 깊은 감회를 일게 했다.

부산시는 인구와 자동차만 팽창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 의식도 높아졌다. 역사적, 민족적 가치가 산업경제 발달 상황 못지 않게 큰 이슈로 대두된다. 영도다리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 시민들 사이에 일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추억은 영원하다고 했다. 영도다리 철거로 추억의 실물은 사라지지만 부산항의 이미지는 도시 전체의 분위기에 걸맞게 일신된다. 이제 영도다리는 수많은 이산가족의 가슴과 현 인의 노래 속에 영원히 남게되고 우리 조국은 이들 추억을 안고 지구촌 경영을 향해 매진할 것이다. 추억과 미래가 담긴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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