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도자

2001-01-1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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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일인 지난 15일은 연방 공휴일로 미국 내 거의 모든 공무원과 학생들이 하루를 쉬며 인권 지도자로서의 킹 목사의 숭고한 삶을 기렸다.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을 향해“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포효한 킹은 끝내 암살범의 흉탄에 쓰러졌지만 그의 꿈은 1963년 8월 23일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반 인종차별 법으로 꽃을 피웠다.

이 법에 따라 인종차별은 증오범죄(hate crime)로 규정됐고 한인을 포함한 모든 소수계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받지 않을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좋은 예가 최근 오션쇼어즈에서 발생한 중국계 이민자의 백인 살해사건이다. 그 백인 청년은 중국인 형제에게 인종적 욕설과 폭행을 가하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배심원은 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했고 결과적으로 가해자인 중국계 이민자는 풀려났다.

킹 목사는 분명 20세기가 배출한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비폭력·무저항 운동의 기수였던 그는 1965년 노벨 평화상의 최연소(36세) 수상자가 됐다. 지난 해 시애틀에서는 왕관으로 된 킹 카운티 정부의 문장을 킹 목사 초상으로 바꾸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애틀랜타에 있는 킹 목사의 묘비엔“I’m free at last.”(마침내 나는 자유인입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의 자유는 곧 모든 소수계의 자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래서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프랑스인 토크빌은 이미 1백40년전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의회나 정부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토양에 의해 지탱된다”고 갈파했다. 시민들의 투철한 참여의식, 풍성한 기회, 다원적 가치관, 다인종적 사회구성 여건 등이 바로 그 토양이다.

지도자는 꼭 정치인 출신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지난 해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W. 부시는 불과 6년전까지 평범한 사업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조종사, 비즈니스맨, 프로야구 구단주 등을 거치며 지도자로서의 비전을 다듬었고 결국 전직 연방상원 의원이며 8년간 부통령 직을 수행한 프로 정치가인 앨 고어를 꺾고 백악관 주인이 됐다.

지도자는 신의를 생명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더해 총체적 이익을 우선해야만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킹 목사가 만약 자기 교회의 사역에만 충실했다면 미국의 국민적 지도자로 추앙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교회의 벽을 넘어 미국의 전체 사회에 만연된 병폐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으며 이 병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미래 지향적 비전을 실현한 사람이다.

킹 목사의 탄생기념일을 계기로 새삼 한인사회의 지도자 난이 마음에 걸린다. 서로 기관장이 되겠다며 아옹다옹하던 한인사회에 요즘은 감투바람이 식었다고 한다. 일부 단체는 새 회장을 뽑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자기 주머니 돈 써가며 회장님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이 전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인사회도 이젠 꿈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야할 때다. 연례행사나 치르며 자리를 지키다가 1년 뒤 물러나는 나약한 지도자는 곤란하다. 한인사회 단체의 벽을 넘어 주류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권익을 챙기는 미래지향적 지도자가 바람직하다.“예”라고 생각되는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고“아니오”라고 생각되는 일은 킹 목사처럼 신명을 걸고 반대하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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