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썩은 신세대

2001-01-1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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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던 운동경기도 관심이 깊어지면 좋아하는 팀이 정해지고 그 팀의 열성 팬이 된다. 한 주일의 기분은 바로 자기 팀의 전력과 직결돼 패하기라도 하면 일주일 내내 우울하고 만사에 의욕도 떨어진다. 그때부터는 팀의 전적을 넘어 감독, 선수 컨디션 등도 큰 관심사가 된다.

매 경기의 스코어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자기 팀의 시즌 전망에 신경 쓰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수년간 팀의 전적을 가늠하게 된다. 감독의 역량 못지 않게 신예선수들의 발굴과 영입이 관건이 된다.
특히 매년 졸업생을 배출하고 우수 고교선수를 스카웃 해야하는 대학팀의 경우는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진정 훌륭한 팀으로 평가받으려면 한 두 해 우승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를 거듭하며 좋은 전적을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입생 후보선수들의 자질이 그해 졸업생 기량을 능가해야함이 필수요건이다.

개인 집안의 경우도, 한 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잘되는 집안은 반드시 자식들 면면이 부모보다 낫고 나라가 융성하려면 기성세대보다 신세대 사고방식이 맑고 밝아야하며 또한 진보적이어야 한다. 자녀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으며 자녀에게 덕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인들의 전통은 곧 다음 세대가 얻을 만족이 당대의 기쁨보다 커야한다는 믿음 때문 아닌가. 한 사회의 장래가 밝으려면 윗물이 맑기도 해야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정과 타협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의 기개, 순수, 그리고 용기가 그 사회에 차고 넘쳐야 한다. 건전한 사회의 본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인상 깊은 점들 가운데 하나는 대다수의 젊은 세대가 순진하고 밝다는 사실이다. 사회봉사활동의 참 의미를 깨닫고, 남의 의견이 자신의 것과 다르더라도 존중할 줄 알며, 돈만을 만사의 척도로 삼지 않는 올바른 가치관이 몸에 배인 점이다. 자기 가족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커뮤니티를 넘어서 불우한 사람을 돕는 일이라면 아프리카 오지도 자원하는 순수한 용기가 바로 미국의 저력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성싶다.

한국 젊은 층의 가치관이 정현준과 진승현의 그것으로 대표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국의 벤처사업가로 자부하는 이 두 사람에 대한 뉴스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사회장래를 우려하게 만든다. 오염된 기성세대를 뺨치는 수법으로 수백억씩 빼 돌리며 기성세대를 무색하게 하는 각종 비리를 아무런 가책 없이 자행했다는 뉴스는 우리를 비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사기치는 기술 먼저 익히고, 보고 배운 것이 모두 그것이라면 악순환치고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젊다는 것이 무엇인가. 부모 세대의 악습을 능가할 정도로 썩어 빠져 있다고 하면 그 사회는 절망뿐이다. 생년월일이 늦어서 젊은것이 아니라 마음이 순수해야 젊다. 정과 진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첫 걸음부터 잘 딛고 동시대 젊은 층의 모범이 돼야 그들도 살고 남도 산다.
노인이 다음세대를 위해 나무를 심는 사회, 그리고 청년은 자기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가 살 맛나고 희망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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