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너지 위기

2001-01-0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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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시작이라며 떠들썩했던 지난해 정초가 엊그제 같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될 것 같았다. 자고 나면 치솟은 주식시장, 닷컴 회사들의 현란한 출현, 덧셈과 뺄셈 능력만으로도 큰소리치며 취직할 수 있었던 고용시장...돈 문제로 골치 썩힐 일이 영원히 사라진 듯 싶기까지 했다.

그 뒤 반년이 못 가서 금이 가기 시작한 주식시장은 바닥 세를 면치 못했고, 과열기운을 식히기 위한 금리인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 이번엔 불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경제가 저속 기어로 바뀔 때마다 불황 가능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올해 경기가 불황에 빠질 확률은 상당히 얕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 겨울 난방 비용은 지난해보다 곱으로 뛰어 소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천연개스 가격 폭등으로 월동비가 보통 가정에서 월 1천달러를 넘게 생겼다. 이런 계산이라면 전 가계 평균 실질 소득을 200억달러씩이나 깎아 내려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서 신년도 1/4분기 경제성장률을 1%나 줄이게 될 것이다. 천연개스 가격이 근 세배나 뛰었으니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의 천연개스는 단위(mbtu) 당 1999년 말 2.50달러에서 지금은 8달러선을 오르내리는 형편이므로 그 여파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가격앙등 현상이 도대체 왜 발생한 것일까? 첫째, 오랫동안 천연개스 가격이 너무 쌌기 때문에 개스개발 부문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 했다가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다. 둘째, 전력생산에서 천연개스 연료비중이 늘어나는 등 천연개스의 수요가 급증했다. 셋째, 동부 및 중부지역에서 예년보다 추운 겨울을 맞아 그렇지 않아도 낮은 개스 재고를 더욱 동나게 하고 있다.

신년도 1/4분기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수많은 소비자들의 지출수준이 이미 상한선을 육박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폭등을 현 소비 수준을 유지하고는 커버할 수가 없다. 미국 소비자의 저축률은 현재 마이너스이므로 결국 에너지 부담이 느는 만큼 다른 분야의 소비를 줄이는 도리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전반적인 경제 성장률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 석유가격이 내리고 있어 개스 및 전기요금의 인상효과를 다소 상쇄하고 있다. 그러나 유류가격 하락은 장기 추세이기보다는 임시 현상일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천연개스 가격 인상은 현재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유류가격 하락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전 세계가 동시에 덕을 보고 있다. 천연개스 가격 폭등은 미국만의 현상이므로 미국의 생산자들을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몰아넣게 되어 수출전선에 이상을 초래하고 무역적자를 더욱 늘릴 수 있다.
예상되는 소비 위축에 대처하기 위해 미 중앙은행이 지난 주 금리인하를 전격 단행한 것은 십분 이해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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