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대중 정부의 통일 집착

2000-06-12 (월) 12:00:00
크게 작게

▶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며(3)

이제, 남북한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게된 한반도내의 사정을 살펴보자. 먼저 남쪽의 경우 네 가지 요소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민선정부의 정통성과 통일정책을 들 수 있다. 지난 과반세기 동안 남한 정부는 여러가지 통일정책을 내놨으나 정권의 정통성 취약으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일관성이 결여된 통일정책은 결국 정권 유지 차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대한민국 창설이래 처음 진정한 민선으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임기안에 자기 정부의 정통성과 통일정책을 결부시키겠다는 열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남한의 역대 정부는 민족염원인 조국통일 성취를 항상 지상의 목표로 삼았으나 김대중 정부처럼 정통성을 가지고 꾸준히 통일정책을 편 정부는 없었다.


둘째, 지난 4월 총선거에서 다수당을 유지하겠다는 여당의 정치적 목표가 이번 정상회담에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김대중 정부의 과감한 북한 유화정책, 즉 햇볕정책과 신 경제정책은 레임덕이 되고 있는 김대통령에 과반수의 여당이 뒷받침해주는 국회가 필요했다. 물론 북한의 호응이 없으면 허사지만 북한은 북한대로 김대중 정부의 총선 승리를 유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많겠으나 우선 김대중 정부와의 교섭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즉 남한의 독수리 파 또는 한나라당과는 대화와 교섭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고 하겠다.

아울러, 남한의 국제 경쟁력도 상정할 수 있다. 남한 경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남한은 최근 부동산 가격과 임금 상승 등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성을 잃고 있다. 북한 재복구는 남한이 경제위기를 타개할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값싼 노동력과 함께 자원 또한 남한보다 많다. 북한의 노동력을 쓰면 국제시장에서 경쟁성을 높일 수 있다고 남한당국과 재벌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셋째, 국방 문제이다. 재정, 장비, 인적자원의 세 요소를 필요로 하는 국방문제에 남북한이 무제한 경쟁을 계속할 수는 없다. 이는 남북한의 국제시장 경쟁력을 더욱 취약하게 할뿐 아니라 특히 북한의 대포와 미사일이 남한지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음을 감안할 때(물론 남한의 무기도 북한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음) 계속되는 군비경쟁은 전쟁 위험을 더 높이기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비축소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남북한 고위층이 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한반도내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패트리옷 미사일 같은 장비를 구입하라고 종용받는 것은 국가의 자주성에 치욕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넷째, 남한내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들 수 있다. 통일을 열망하는 진보적 인사와 단체들은 통일을 앞당기는 정책을 강력 요구하지만 6·25 이후의 일부 세대는 통일이 꼭 필요하냐는 시각을 보이며 남북한 민족의 동질성까지도 의문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거의 1천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의 재회 열망은 어떻게 보면 남한 정부에 정치적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이상의 국내 사정을 고려할 때 남한 당국의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집착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