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떠나자 보란듯 밀착한 중러 정상… ‘美중심질서’ 균열시도

2026-05-20 (수) 09: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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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방중 나흘만에 푸틴 국빈 방중… ‘다극화 세계질서’ 내세우며 협력 재확인

▶ 사실상 美겨냥 발언 쏟아내…미중정상회담 때와 달리 공동성명·공동회견도

트럼프 떠나자 보란듯 밀착한 중러 정상… ‘美중심질서’ 균열시도

공동성명문에 서명한 중러 정상[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직후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러시아 정상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밀착 관계를 과시하면서 미국이 보란 듯이 '다극적 세계 질서 구축' 방침을 천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일정(19∼20일)이 확정 발표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13∼15일)을 끝낸 다음날이 16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이어 푸틴 대통령이 곧바로 베이징을 찾으면서 미중 정상의 만남과 중러 정상의 만남은 자연스레 대조를 이뤘다.


미중 회담은 이란 전쟁 등 글로벌 정치·경제 불안정을 가라앉힐 '세기의 담판'이 되리라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양국 무역 갈등 휴전을 연장하는 정도의 '스몰딜'만을 도출했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을 '황제의 제단' 톈탄(天壇)과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중국의 '심장부' 중난하이(中南海)로 초대해 환대하면서도, 이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 상대라는 메시지를 단호한 어조로 발신했다.

패권 경쟁에 따른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하거나 대만 문제를 미중 충돌과 연결 지으며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3년 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하며 중국의 세력권을 넓혀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뤄진 푸틴 대통령의 방중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패권 체제를 겨냥한 '공동 전선'을 펴고 단단히 밀착하는 구도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중러 양국은 이날 '진일보한 전면적 전략 협조 강화와 선린 우호·협력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세계 다극화와 신형 국제 관계 제창(唱導)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전자가 이미 최상위 수준인 양자 관계의 강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면, 후자는 '미국 일극주의'가 지배적인 자유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또 다른 축으로 떠오르는 '다극화' 국제 질서 구축의 가속화를 선언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날 중러 정상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시 주석은 "현재 국제 정세는 혼란과 변화가 뒤엉켜 있고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역류가 횡행하고 있다"며 "평화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하며 협력을 촉진하려는 것은 여전히 민심의 방향이자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참여국의 이익 균형을 바탕으로 한 다극적 세계를 형성하는 복잡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며 "중국과 함께 문화와 문명의 다양성을 수호하고 각국의 주권적 발전 권리를 존중하며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방주의·패권주의'는 중국이 미국을 비판할 때 자주 활용하는 표현이다. 푸틴 대통령의 '문화와 문명의 다양성 수호', '각국의 주권적 발전 권리 존중' 등 언급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 비판과 연결된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리스크에 노출된 중국에 손을 내밀기도 했다.

양국은 이번 푸틴 대통령 방문의 '격'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수준에 뒤처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지난 15일 홍콩 매체에선 푸틴 대통령이 20일에 하루짜리 간소한 방문을 할 것이라는 소식통발 보도가 나왔는데, 다음 날 중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이틀 동안 국빈 방문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군 사열 등 최상급 의전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 수준으로 예우한 셈이다.

19일 밤늦게 베이징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을 영접한 것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당 중앙정치국 위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한정 국가부주석보다 권력 서열이 앞서고, 외교 라인 사령탑으로서 실권을 갖춘 왕이 부장이 직접 나와 푸틴 대통령의 면을 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부총리 5명에 장관 8명이라는 대형 고위급 수행단을 대동했고, 20일 중러 소인수 회담에 이어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각각 18명씩의 참모를 배석시켰다. 덕분에 미중 정상회담(미국 배석자 10명·중국 11명)을 훌쩍 뛰어넘는 회담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미중 양국은 9년 전 트럼프 대통령 방중 때와 달리 공동 기자회견도 열지 않은 채 각자 짤막한 보도자료만 내놨으나, 중러 정상은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공동 회견도 열었다. 중러는 경제·무역·교육·에너지·과학기술 등 40개 협력 문서에 조인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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