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김정은의 ‘체육 정치’
2026-05-20 (수) 12:00:00
민병권 / 서울경제 논설위원
소총 사격, 수류탄 투척, 속보 행군. 전쟁 연습 같지만 이는 놀랍게도 1931년 도입된 옛 소련의 국민 체육 프로그램이다. 약칭은 게떼오인데 긴 원어 이름을 직역하면 노동과 국방을 위한 준비라는 의미다. 북한은 김일성 정권 때 게떼오를 수용한 ‘주체 체육’을 만들어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 주체 체육 기조는 1972년 개정 헌법에 ‘체육을 대중화하고 국방체육을 발전시켜 전체 인민을 노동과 국방에 튼튼히 준비시킨다’는 조문으로 반영됐다. 김정일 정권도 주체 체육을 이어받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집권 후 주체 체육 정책의 실행 방향에 변화를 줬다. 개인 건강과 체육 생활화·선진화를 강조했다. 집단주의와 국방·노동력 증진을 앞세웠던 선대 정권들의 정책과 차별화한 것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스포츠 관련 현장을 최소 수십 번 공개 방문했다. 17년 재임 기간 중 14번만 체육 분야 현장 지도를 했던 선친과 다른 행보다. 애민적 신세대 지도자 이미지 구축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체육 정치’에서 체제 약점을 숨기려는 의도가 읽힌다. 피폐한 경제는 일으키기 어렵지만 국제 스포츠 경기의 성적은 단기간에 낼 수 있다. 북한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자국 선수단이 20년 만에 최고 성적(금메달 4개, 동메달 2개)을 내자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2014년 아시안게임 7위 달성,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 파견도 김정은 체제의 성과로 포장했다.
■북한 여자 축구단이 12년 만에 방한해 20일 우리 측 수원FC 위민과 경기를 벌인다. 경제 순위와 달리 여성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에서는 북한(11위)이 우리(19위)를 앞선다. 우리는 남북 화합·통일의 큰 그림에서 스포츠 교류를 추진해온 반면 북측은 체제 경쟁·정권 유지 목적의 선전선동 전략을 늘 앞세웠다.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김정은 정권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난달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 리일환 노동당 선전 비서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직 사실을 공개한 속뜻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민병권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