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평균 축의금 11만7000원

2026-05-19 (화) 12:00:00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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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TV 예능프로그램에선 결혼 축의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후배 축의금으로 5만 원을 내겠다고 밝힌 출연자에게 “부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집중됐고, “요즘 식대가 10만 원을 넘는데”라는 핀잔 섞인 말도 오갔다. 5만 원이 적정 수준이라는 의견은 묵살되는 분위기였다. 이와 반대로 친한 친구라면 1,000만 원을 축의금으로 내놓겠다는 출연자도 나왔다. 결혼 축의금을 얼마나 내는 게 적당한지 단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경조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 공동체가 나눠 내는 문화는 구성원 결속력을 높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대체로 장려돼 왔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까지 주로 현물을 부조하는 형식이었다. 조선 초기 주자증손여씨향약에 따르면 혼례 시 선물을 주고받음은 마땅하지만 풍속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옷감, 음식 등으로 품목을 한정하고 그 수량에도 상한을 뒀다고 한다. 지금 화폐단위로 대략 5만 원 내외 가치의 부조가 오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일제강점기 후 우리나라에도 돈봉투 문화가 뿌리내렸다. 결혼을 ‘경제적 거래’로 인식하며 지참금을 놓고 충돌까지 불사하는 문화권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때부터 돈이 성의와 직결되는 풍조 또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암묵적이나마 축의금 적정선이 그어졌고,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994년 당시 하객들은 대략 이를 3만 원으로 여겼다고 한다. 2001년 조사에서는 5만 원에 근접했으며, 2019년엔 급기야 5만 원과 10만 원으로 양분되는 수준까지 뛰었다.

■ 최근 NH농협은행이 지난해 열린 결혼식에 전달된 축의금 데이터 533만 건을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회당 평균 축의금은 11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다시 말해 이제 10만 원을 내도 적정 수준 이하라는 의미가 된다. 5만 원권 지폐 두 장을 넣고도 부족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30세대가 낸 축의금이 평균 13만8,000원으로 어떤 연령대보다 높았다고 한다. 역대 최악 취업난을 겪는 결혼 적기 청년들이 축의금 부담을 누구보다 무겁게 지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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