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에세이] 한사람을 가졌는가

2026-05-20 (수) 12:00:00 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크게 작게
나이들수록 공동체란 얼마나 허약하거나 허위이거나, 환상을 머금은 단어인지를 절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어느 공동체엔가 속해있다. 때로 발가락만 디밀고 있기도 하고, 머리가 되기도 하고, 몸통이 혹은 수족이 되기도 한다. 어느 포지셔닝이건 진실은 하나다. 영원한 건 없다는 것. 모든 시절은 5월의 어느 밤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나온다. 저런 인생 공동체는 판타지가 아니냐며 현실감 없다 하지만. 불현듯 사랑했던 나의 공동체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고, 가족보다 더더 은밀하고 재밌었다. 금요일마다 모여서 놀았는데, 친구들은 말한다. 그 때 우리 화양연화였어. 왜 그리 집에 가기 싫던지.

이후 우리중 누군가 아팠고, 다른 사랑에 빠졌고, 일독에 빠졌고, 하나둘 이가 빠지자, 어느새 모두 그 시절로부터 걸어나갔다. 공동체란 이다지도 허약한 것, 부질없는 것이란 얘기가 아니다. 그 시절이 나를 지키고 키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때,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다해봤다. 그런데도 늘 괜찮았고 더해도 된다고 지지받았고 안되면 말라고 위로받았다. 함께한 시간과 마음은 내 체력이 됐고, 경험 최고치를 갱신하며 역량으로 거듭났다.


어떤 공동체는 넌덜머리가 나 아예 탈퇴해버리기도 했고, 적은 두되 마음은 짜게 식어버린데도 있고,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어진 곳도 있다.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도 꼭 그렇지.) 예전에는 원인을 규명해보려 애썼다. 굳이 나의 변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 잘못도 아니다. 그 시절이 지나간 것일 뿐. 물론 간절했다면, 내 인생의 둘도 없는 인연이었다면, 왜 놓쳤겠나. 7%의 간절함이 없었던거겠지.

공동체의 판타지를 뒤로 하고 그래도 분명한 것은 ‘한사람’이 갖는 힘이다. 아무때나 갈 수 있는 아지트 없어도 되고,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남이가 공동체 따위 없어도 된다. 하지만 ‘한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 더러 꼬옥 안아주는 사람, 나의 쎈척이 하룻강아지 캉캉거리는 거랑 같다는 걸 아는 사람, 맛있는 거 먹고 싶어.가 오늘은 좀 힘들어.라는 걸 금세 눈치채는 사람,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완벽한 타인 한사람.

살아갈 이유, 그 한사람이면 충분하다. 나는 당신은 그 한사람을 가졌는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봄날의 끄트머리다.

<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