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 김 ‘해피 오토’ 대표
▶ 바디샵 업계 원로 전문가
▶ 특전사 동우회장 역임
▶ “정직 원칙·고객만족 보람”
![[화제 인물] 바디샵 ‘터줏대감’… 36년 현장 지켜 [화제 인물] 바디샵 ‘터줏대감’… 36년 현장 지켜](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6/05/19/202605191817246a1.jpg)
해피 오토 바디샵의 로이 김 대표는 “정직하게 약속을 지키는 것이 변하지 않은 나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
아침 7시. LA 한인타운 서쪽 베니스 길에 위치한 해피오토 바디샵의 영업시간 시작이 아직 한 시간 남았지만 사무실 문은 이미 열려 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마당에는 이미 몇 대의 차량이 들어와 있다. 프리웨이 사고, 주차장 접촉사고, 보험 처리 전 단계의 차들까지, 하루는 늘 이렇게 먼저 도착한 문제들로 채워진다. 로이 김 대표는 익숙하게 공장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온 차량 상태를 먼저 눈으로 확인한 뒤 필요한 작업 순서를 조용히 정리한다.
사고로 경황이 없는 손님에게 토잉부터 렌터카, 차량 수리까지 한 번에 이어주는 원스톱 서비스는 이곳의 오랜 원칙이다.
로이 김 대표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에서부터다. 공수특전단 9여단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했던 그는 군 제대 후 개인 사업을 하던 중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친척의 권유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물품 관리로 시작했지만 직접 차를 만지는 일에 흥미를 느껴 1년 만에 기술을 익혔고 이후 정비소를 차렸다.
그러다 30대 초반이던 1989년, 먼저 정착해 있던 가족의 초청으로 노총각 신분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왔다. 도미 직후 샌디에고 군 기지에서 선박 우레탄 페인트 작업을 시작했다. 강한 독성 페인트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쓰고 작업해야 했고, 10분 일하고 30분을 쉬어야 할 만큼 고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한국일보에 난 광고를 보고 샌디에고 부대에 들어갔다”며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기술을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 3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LA로 스카웃됐다. LA 바디샵에서 페인터로 10년간 근무하며 기반을 다진 뒤 독립했다.
독립 후 사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첫 사업체인 스마일 바디샵을 시작으로 공장을 3개까지 늘리며 번창했다. 수많은 고객을 만나며 까다로운 요구에도 대립하기보다 눈높이를 맞췄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퍼주는 것을 즐겨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였다. 김 대표는 “돈을 엄청나게 잘 벌었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뭘 차리면 잘됐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서 많이 찾아와줬다”며 “그렇게 쌓인 인연들이 워낙 많다 보니 환갑 때 남들 안 하는 잔치도 크게 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망각’과 ‘허허실실’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돈을 빌려 갚지 않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상처를 받기 전에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며 “잘못을 겪어도 세 번까지는 용서한다는 나만의 기준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던 그는 재미 대한민국 특전사동지회 회장을 5년간 맡았고, 15년 넘게 봉사활동을 이어오며 이를 삶으로 실천해왔다.
36년간 차를 만지며 한인타운 바디샵 업계의 원로가 됐지만 은퇴 계획은 없다. 경영은 다음 세대에 넘기더라도 자신은 끝까지 현장에 남아 사람들과 함께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차를 고친 손님들이 만족한 얼굴로 돌아갈 때 느끼는 보람은 군 시절 낙하산 하강 순간만큼 짜릿하다”며 “차를 만지는 일이든 사람을 대하는 일이든 정직하게 약속을 지키는 것이 변하지 않은 나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주소: 3620 Venice Blvd. LA, (323)73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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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