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100년 만의 변국은 더 빨리 전개되고 있고 국제정세는 어지럽게 뒤엉켜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갈림길에 이르렀다. 미국과 중국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
트럼프와의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발언한 내용이다. 이와 함께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은 구글 검색 1순위 인기어로 떠올랐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스, 타임 등 주요 언론들은 관련 논평에, 해설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강국이 기존의 패권국 자리를 위협할 때,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인해 결국 양국 간에 피할 수 없는 무력 충돌(전쟁)이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국제정치학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밝힌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 이었다’는 분석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버드대의 그레이엄 앨리슨이 21세기 미-중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대중화됐다. 엘리슨에 따르면 1500년대 이래 16차례의 패권국과 신흥국 대립 사례 중 12차례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
근 9년 만에 열린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그러면 왜 시진핑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호출하고 나섰을까.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을 호출하는 순간, 중국은 아테네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았다. 이는 중국의 부상이 기존 질서를 흔들 만큼 현실적인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세계 앞에서 공인하는 행위로 그 안에는 거대한 자신감이 숨어 있다.’ 르몽드의 지적으로 미-중 관계가 새로운 대국관계로 재편됐음을 알리는 전략적 메시지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발언은 평화공유를 원하는 우호적 발언이 아니다. 경고 발언이자 위협으로 들린다.’ 더 프리 프레스의 논평이다.
‘1500년대 이후 17번째가 되는 패권국과 신흥국의 대립,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13번째의 대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미국)의 태도와 행동에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 과거 20세기 초 영국이 미국의 부상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중국주도 세계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 피하기’에는 이 같은 논리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진단하면서 던진 지적이다.
중국이 계속 영토 확장 정책을 펴나간다. 주변국을 윽박지르면서. 그 결과 서태평양 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그래도 그 대부분의 잘못은 미국에 있다는 게 앨리슨의 논리라고 할까. 그러므로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발언은 미국의 엘리트계층을 노린 교묘한 정보전이라는 거다.
‘공산당 치하의 중국은 인민의 행동뿐이 아니다. 생각까지 통제하면서 영토 확장 해외정책을 통한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 세계의 도래에 대한 저항은 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 그 중국 주도 시계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노예화를 받아드리는 것이다.’
이어지는 더 프리 프레스지의 지적으로 투키디데스 함정이 지닌 논리의 지나친 단순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발언은 역사에 대한 무지와 동시에 스스로의 허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후버 인스티튜트의 마이클 오슬린의 지적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한 물 간 논리’로 그 투키디데스 함정을 10년 너머 계속 소환하고 있다는 자체가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중국 이데올로기의 낙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이 같은 진단과 함께 시진핑의 발언은 다른 한 면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으로 오슬린은 풀이했다.
그 시작은 파나마운하 재탈환 공언에서 시작됐다. 이어진 게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제거다. 이슬람혁명수비대 정권의 운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에 몰려 있다. 쿠바의 레짐 체인지도 눈앞에 다가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잇단 패배와 함께 러시아는 전승절 행사도 제대로 못 치렀다. 트럼프 2.0 1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전개되어온 일련의 사태다.
여러 전선에서 동시다발적 도전을 통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킨다. CRINK, ‘새 악의 축’의 수장 중국의 미국억제 전략이다. 그 전략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할까. 그게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시점의 상황이다.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발언은 이에 대한 두려움, 초조감의 발로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련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은 ‘Revisionist power trap’이다. ‘수정주의 세력 함정’ 또는 ‘현상 타파국가 함정’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수정주의 세력)이 기존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다가, 기존 패권국과 주변국들의 강력한 견제와 봉쇄에 부딪혀 좌절되거나 고립되는 지정학적 위기를 의미한다.
피크 차이나(Peak China- 수십 년간 고도성장을 보여 온 중국 경제가 성장의 정점을 찍고 장기적인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담론)와 함께 대두된 이론으로 ‘기회의 창’이 닫혀져 가고 있다는 두려움과 초조감으로 수정주의 세력, 중국은 군사적 모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안팎의 도전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시진핑 체제. 어디로 튈까. 그 돌파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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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