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동절에 생각하는 노동자 하느님

2026-05-12 (화) 07:51:51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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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일’인지 모른다. 한 시인은 그의 시에서 하루의 삶을 ‘사는 일’이라 이름하였다.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 (나태주, 사는 일) 삶과 일은 나눌 수 없다.

무엇이 일어나는(rise, appear) 것, 무엇을 해야하는 것, 무엇을 이루어 내는(make, work) 것,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오고가고 주고받는 우리의 모든 활동들, 사람 사이에서 자연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이며 우주적인 신진대사(新陳代謝)가 겨레의 말로 일(事)이요 노동(勞動)이다.

5월 1일, 노동절(勞動節)이 며칠 전이었다. 한국 정부는 그 동안 ‘근로자의 날’ 이름으로 지켜 오던 것을 63년만에 ‘노동절’로 기념하니, 더 의미로웠다. 일을 뜻하는 ‘노동’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몇십 년간 굳이 ‘힘들여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근로’(勤勞)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것은 아마도 노동자의 근로의식을 고양하려 했던 정부나 고용자 입장의 반영으로 어림된다.


오늘 날 5월 1일 노동절(May Day)은 세계 160여 국가에서 공식 기념일로 지킨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환경에 반대하여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대규모 총파업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5월 1일이 아니라,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Labor Day)로 지켜오고 있다.

개인의 삶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노동의 중요성은 참으로 지대(至大)하다. 정신분석학의 기초를 닦은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어느 자리에서 사람이 언제 행복한지 행복의 비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노동과 사랑.” 이 말에 대한 그의 덧붙여진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자신의 노동에 완전 집중하여 자신과 주변 세계를 잊어 버렸을 때 망아(忘我)의 몰입감에서 오는 행복이거나, 노동을 통하여 자신이 이웃이나 세상과 하나로 이어졌다는 일체감과 보람에서 오는 행복을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동은 노동자나 이른바 노사정(勞使政)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고, 나와 이웃을 연결해 주고, 사회를 결속시켜 주는 노동은 인류 모두의 문제이다. 노동은 자아를 실현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준다. 튀니지에서 실업(失業) 문제와 빈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던 ‘아랍의 봄’의 시기, “일 없이는 존엄도 없다. No Work, No Dignity.”는 구호가 나온 적이 있다. 노동은 단지 임금(賃金)이 아니다. 노동은 자기실현과 사회참여를 통해, 경제적 자립생활을 통하여 인간을 존엄하게 한다.

노동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모든 종교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하느님이 노동자이시기 때문이다. 구약(히브리)성경 창세기는 태초(太初)에 노동이 있었다고 말씀한다. 하느님은 창조의 첫날 빛을 만드셨다. 일, 노동을 하신 것이다. 둘째 날에도, 셋째날에도 … 엿샛날까지 일하시고 쉬셨다.

하느님은 우주의 첫 노동자이셨다. 노동자 하느님은 또한 첫사람에게 땅과 자연의 만물들과 에덴동산을 돌보라는 일을 맡기셨다(창세2:15) 예수 또한 자신이 노동자 이심을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요한5:17) 예수께서 하느님은 농부라 곧 일하시는 노동자라 말씀하셨다. 인류의 노동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땀흘려 정성껏 해내야 하는 거룩한 일 곧 성무(聖務)이다. 농자(農者)천하지대본은 곧 노동자 천하지대본과 다르지 않다. 노동의 신성함이다. 노동은 나와 이웃과 자연과 하느님을 하나 되게한다. 우리는 노동에서, 노동자에서 이웃과 하느님을 보아야 한다.

노동이 흔들린다. 노동소외 현장에서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음이 아프다. 노동에서 빈부 양극화의 확대를 본다. 개선해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저서에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을 주장한지 30년이 지났다. 휴머노이드(Humanoid) 등장으로 그가 말한 노동 없는 세상이 이미 부분 현실화 되고 있다. 노동없는 세상을 내다보며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노동, 좋은 노동의 의미와 길을 찾아내야 한다. 노동절을 맞이하여 더 인간적인 노동, 더 창조적이고, 더 관계적이고, 더 의미 있는 노동을 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으로 행복하고, 노동으로 인간의 존엄성 지켜내며, 평화로운 세상을 일구는 ‘새로운 노동 사회’를 꿈꾼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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