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갔었다. 한국 근대 미술을 총망라한 카운티 미술전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화가의 작품은 물론, 희귀한 개인 소장품까지 볼 수 있었다. 특히 작품 해설을 ‘방탄소년단’ 리더인 ‘김남준’ 군이 하니 이어폰을 꼭 갖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동창 선후배들과 함께 갔다. 처음 보는 대선배가 명함을 준다. 화가인 그녀의 이름과 큐알코드(QR CODE), 그 밑에 웹사이트 주소가 있는 간단한 명함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전시 그림 옆에 모두 큐알코드가 붙어있다. 이어폰을 꽂고 스캔하니 해설하는 김 군의 목소리가 영어로 나온다. 영어권 젊은이에게 한국 미술을 알리려 평소 미술관 관람을 즐기는 그를 택했나 보다. 이어폰을 빼고 한국어 해설을 찾아 설명을 읽었다. 어떤 코드는 스페인어 해설인 것도 있다. 팬데믹 시절엔, 식당에 갈 때마다 메뉴판 대신 큐알코드를 스캔해야 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이제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지만, 그날따라 그림 보랴 전화기 해설 보랴, 큐알코드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조금은 불편했다.
집에 와서 선배가 준 명함을 스캔했다. 팔순 중반인 그녀가 활동했던 그동안의 작품과 약력, 수상, 그림은 물론이고 책까지 낸 모든 행적이 화려하고도 자세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별다르고 신기한 디지털 세상에 나는 빠져들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 굴에 서 나온 듯 멍멍하다. 아직은 아날로그 세상이 편하지만, 미술관 관람과 선배의 ‘가상명함(Virtual Contact Card)’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디지털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1994년 일본 덴소 웨이브(Denso Wave)사가 개발한 2차원 바코드인 큐알코드는 빠른 인식과 많은 정보 저장으로 이제는 어디 가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어 순화 캠페인에서는 격자무늬 코드라고 이름 지었지만, 다들 큐알코드로 부른다. 큐알코드의 문양을 볼 때마다 신기한 생각이 든다. 어떨 땐 선뜻 스캔하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옅은 불안이다. 마치 알리바바의 ‘열려라! 참깨’ 하면 열리는 비밀 문인 건가? 어떨 땐 마치 오래된 부적 무늬를 보는 느낌도 든다. 글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이 정보무늬가 나를 어디로 안내하는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따라가느라 힘겹다. 황새걸음을 참새가 따라가려 애쓴다고나 할까? 나의 정서는 아직도 아날로그 세상에 머물러 있는데. 그럼에도 스마트 폰으로 거침없이 찍어댄 수천 장의 사진들은 저장 공간이 모자란다고 해서 구름 아닌 클라우드에 돈까지 내며 빌리고 있다.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도 최소주의를 적용해야겠다. 디지털 공간도 무한이 아니고 결국은 데이터 센터라는 물리적인 건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 편리함을 아날로그적으로는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정보보다는 감정을 보관하는 아날로그적 세상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다. 손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 LP판으로 듣는 음악, 필름 사진들. 우리의 정감은 사라지는 것, 낡아가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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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