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화경] ‘LG사단’의 바이오 레거시

2026-05-04 (월) 12:00:00 김정곤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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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LG그룹은 고(故) 구자경 2대 회장의 지원으로 럭키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럭키중앙연구소는 설립 당시만 해도 석유화학 분야를 주로 연구했다. 이후 198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출신인 고 최남석 박사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하면서 국내 최초의 유전공학연구부를 설치했다. 당시는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으로 돈을 벌던 시기다. 신약 개발의 황무지였던 우리나라에 바이오산업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최 박사는 15년 동안 LG화학 연구개발(R&D) 부문을 이끌며 신약 개발 DNA를 심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What’s new(새로운 것은 없나)”라고 인사를 건넸다. 연구원들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움을 추구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특히 후배들이 R&D 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산실인 ‘LG사단’의 영원한 보스로 불리는 이유다. 최 박사가 뿌린 씨는 알테오젠·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펩트론·오름테라퓨틱·큐로셀 등 국내에서 주목받는 바이오벤처로 꽃을 피웠다.

■최근 LG사단의 맏형 중 한 명인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가 후임을 역시 LG사단인 박세진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맡기고 사업자문 역할로 한발 물러났다. 김 전 대표 역시 최 박사처럼 평소 R&D와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대전 본사 1층 로비에 “오직 신약 개발만이 살길”이라는 문구가 적힌 세계지도 배경의 시계가 걸려 있을 정도다. 그는 R&D 자금 마련을 위해 오리온에 보유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 일부 업체의 불성실 공시 논란으로 건실한 바이오벤처들까지 덩달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K바이오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바이오는 반도체에 이어 미래 먹거리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LG사단이 일군 레거시가 헛되지 않도록 R&D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정곤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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