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아스포라 시선으로 재해석한 식민 통제·저항의 역사

2026-05-01 (금) 12:00:00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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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겐하임 펠로우십 수상 신경미 개인전

▶ ‘내 환상의 업보’ 페로틴LA서 오늘 개막

디아스포라 시선으로 재해석한 식민 통제·저항의 역사

신경미 작가

LA에서 활동하는 2025년 구겐하임 펠로우십 수상작가 신경미씨가 페로틴 LA(Perrotin Los Angeles)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내 환상의 업보’(My Fantasy’s Burdens)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식물의 전 지구적 이동, 식민지 자원 수탈, 그리고 생물 탐사에 얽힌 복잡한 역사를 작가 특유의 다층적인 시각 언어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25년 구겐하임 펠로우십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지식과 욕망의 초국가적 경제’에 관한 심도 있는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나의 작업은 19세기 유럽 식물학자와 삽화가들에 의해 수집·분류·미화되고, 무역상과 정부에 의해 자본화된 식물 표본들이 어떻게 제국주의 통제 시스템 내에서 도구화되었는지 심문하는 과정이며, 디아스포라적 기억과 체현된 지식을 통해 그 폭력의 역사 속에 ‘거부의 미학’을 기입하는 시도”라고 밝히고 있다.
디아스포라 시선으로 재해석한 식민 통제·저항의 역사

신경미 작품 ‘뒤틀리고도 우아한 황색’ (Perverse delicate yellow·2025)


주요 작품들은 목재 패널 위에 유럽풍 중국 양식의 시누아즈리 직물을 덧대고 그 위에 사진 전사와 아크릴 채색을 혼합한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는 서구적 환상과 타자화가 투영된 이 직물 위에 한인 디아스포라의 초상 사진을 전사하고, 과거 식민지 분류학의 대상이었던 식물 도상들을 그 위에 덧입혔다.

이는 마치 여러 겹의 시간과 의미가 중첩된 ‘시각적 팰림세스트’(palimpsest)를 연상시킨다. 단순히 이미지를 쌓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판타지’와 ‘상품화된 타자성’을 상징하는 직물 위에 디아스포라의 실존을 덧입힘으로써, 과거 제국주의 시스템이 규정한 지식의 체계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전시의 핵심 상징인 ‘피콕 플라워(peacock flower)’는 식물학적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저항의 아카이브를 소환한다. 작가는 이 식물이 과거 수리남의 노예 여성들이 ‘노예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낙태제로 사용했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한다.

작가노트에 따르면, 이 꽃은 제국주의 통제 아래 자본화된 식물 자원인 동시에, 자신의 신체와 생식권을 지키려 했던 여성들의 ‘절박한 거부의 행위’를 상징한다. 이는 전시 제목인 ‘내 환상의 업보’가 단순히 개인적인 성찰을 넘어, 인류가 자행한 착취와 추출의 역사적 대가를 의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작품 곳곳에는 한국 무속 신앙의 우주론에 등장하는 영물, 부적, 신령의 도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중세 유럽 필사본의 인면조 ‘하피’와 같은 도상을 결합함으로써 신화와 괴물성, 그리고 여성화된 신체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전시장 내 설치된 세라믹 화분들 역시 이러한 ‘하이브리드 바디’를 형상화하고 있다. 로코코 양식의 과잉된 장식과 시누아즈리 문양이 결합된 이 조각적 화분들은, 식민지 지배층의 탐욕스러운 미적 취향과 그 과정에서 도구화된 여성과 자연의 신체를 교차시킨다.

신경미 작가는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UC 버클리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회화, 조각, 사진을 넘나들며 식민주의와 자본주의가 개인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을 탐구해 왔으며, 최근 LA 클리퍼스의 홈구장인 ‘인튜이트 돔’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게티 미술관, LACMA 등 세계적인 기관에 작품이 소장된 그녀의 이번 전시는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어떻게 미학적 개입의 장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 시선으로 재해석한 식민 통제·저항의 역사

신경미 작품 ‘구 세계가 문을 두드리다’ (The old world came knocking)


신경미 개인전은 오늘(1일) 오후 6~8시 페로틴LA(5040 W. Pico Blvd.)에서 개막하며 전시는 30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 운영 시간은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의 (323)433-4063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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