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신을 다시 찾는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1990년대 소비에트 붕괴 이후 러시아가 보여준 경로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루아침에 초강대국에서 붕괴 국가로 추락한 러시아 사회는 경제적 파탄뿐 아니라 정체성의 공백을 겪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러시아 정교회였다.
정교회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진 세계를 설명해 주는 서사였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제공하는 도덕 체계였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시 정의해 주는 정치적 도구였다. 푸틴은 이를 정확히 읽었다.
그는 정교회를 국가 권력의 파트너로 끌어들여 제권일치(Caesaropapism)적 권력구조화를 하였다. 그래서 종교는 푸틴 권력을 신성화했으며, 권력은 종교에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경제적 회복과 별개로 ‘정신적 재건’이라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 패턴은 러시아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제국이 쇠퇴하거나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 종교는 반복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의 중심으로 복귀해 왔다.
비잔티움 제국이 그랬고, 근대 초기 유럽의 종교개혁기 역시 정치 권력과 종교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균열 속에서, 종교는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가장 강력한 언어로 재등장했다.
오늘날 미국이 처한 상황 역시 이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인종·이민 문제, 성 정체성과 가족 개념의 변화,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는 기존의 ‘미국적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 세력은 종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결속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기독교 민족주의’의 부상이다.
이 흐름은 단순한 문화 전쟁을 넘어 정치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종교적 언어는 정책 논쟁을 도덕적 절대성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타협의 공간을 급격히 축소시킨다. 낙태, 성소수자 권리, 교육 문제 등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대립은 이미 그 전조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이 푸틴의 러시아를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세속주의와 자유주의가 사회를 해체한다고 보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비록 클렙토크라시(도덕적 부패 정권)일지라도, 자국 민족의 정체성을 종교적 기반 위에 세울 줄 아는 전략가”라며 푸틴을 모델로 제시하며 '유대-기독교적 가치(Judeo-Christian values)’와 근본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미국 건설을 2014년 바티칸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제안했다.
베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동의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국가 재구성을 제시했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종교와 국가 권력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질서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개인 숭배적 이미지 정치 역시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지도자를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사명을 가진 존재’로 재구성하는 순간, 정치적 충성은 신념의 문제가 된다. 이때 국가는 제도라기보다 신앙 공동체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미국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정교분리를 핵심 원칙으로 삼아 왔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특정 종교를 국가 정체성의 중심에 두는 순간, 통합이 아니라 분열이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단일한 역사·민족·종교적 기반 위에 세워진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시대는 언제나 단순한 해답을 요구한다. 복잡한 문제를 선과 악으로 나누고, 과거의 ‘순수한 가치’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강력한 정치적 동원이 된다. 이것이 바로 ‘정교화’의 유혹이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은 불확실성 속에서 더 많은 다양성과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더 강한 정체성과 신념을 선택할 것인가. 전자는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민주주의의 길이고, 후자는 빠르고 강력하지만 쉽게 배타적·제권일치적 권력으로 기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미국의 유권자들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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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