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惡의 軸)은 2002년 1월29일 조시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지목하며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란은 1979년 이란혁명을 일으키면서 반 서방 국가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미국과 친밀했던 팔라비 왕조가 붕괴되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신정 국가가 수립되면서 서방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노선을 택했다. 이란 정권의 행보는 지배세력이 국민의 삶과 안녕보다 권력유지를 중시하는 탓에 다수 민중의 삶이 고통 속에 방치됐다는 공산주의 체제와 너무도 일치한다.
45년동안 이란이 미국에게 저지른 만행은 수도 없다. 1979년 11월 이란 정권의 지원을 받은 학생들이 테해란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66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잡았었다.
1983년 4월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지하드가 베이루트 미 대사관을 자살폭탄 공격해서 미국인 17명이 사망했고, 그해 10월에는 이란 지원 해즈볼라가 베이루트 해병대 숙소를 트럭 폭탄으로 공격해서 미군 241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984년에는 CIA 지부장 윌리암 버클리를 납치해서 사살, 같은해 9월에는 베이루트 미 대사관 별관을 또 폭탄 공격해서 23명이 사망했다.
12월에는 쿠웨이트 항공기를 납치해 테해란으로 끌고 가 미국인 2명을 고문후 사살. 1985년에는 TWA 847편을 납치해서 미 해군 잠수무를 고문한 뒤 총으로 쏴 죽였다.
1989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복무 중이던 미 해병대 대령 윌리엄 히긴스가 살해당했다. 그 이후로도 2003년 부터 2024년 사이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은 중동에서 180회 넘게 미군을 공격 살해했다.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수십년 동안 공격과 충돌을 해왔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종교 지도자가 통치하는 이란의 신정체제는 독제와 극심한 경제난과 히잡 미착용 여성들을 처벌하는 등 국민 기본권 탄압으로 47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실탄 사격 등 강경 진압으로 수백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25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지닌 고대 문명국이었던 왕조국가가 1979년을 끝으로 이슬람 혁명 독제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악의 축(惡의 軸)국가로 급선회했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이 이란의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던 ‘모사데크’ 이란 총리를 전복시키는 쿠테타를 지원하며 내정 간섭을 시작으로 이는 향후 반미 감정의 씨앗이 되었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끝난다 해도 국지전은 계속 충돌할 것이고 에너지 패권과 친중(親中) 네트워크 와해라는 국가 전략면에서도 미국은 어려움이 도처에 무성할 것이다.
이란 역시 핵 개방과 호르무즈 이권 포기는 실권(失權)으로 귀결될 수 있으니 쉽게 놓을 수 없는 생존 문제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 대에 낙관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쌍방이 전쟁 종식을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불분명(不分明)한 전쟁 종식을 논하는 것은 이쯤에서 거두고 이란의 고대에서 내려온 천일야화(千一夜話) 아라바안 나이트를 살펴보자. ‘사산’ 왕조의 왕중왕에게는 사이가 매우 좋은 두 아들이 있었다.
왕이 승하한 뒤 형이 법도에 따라 왕국을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있었으나 동생을 아끼기 때문에 나라의 절반은 자신이, 그리고 절반은 동생에게 주어 다스리도록 했으며 어진 두 형제는 백성들에게 매우 칭송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앙비가 주방의 노예와 부정을 저지른 것을 보고 두사람을 척살(刺殺)한 후 배신당한 형은 분풀이로 매일밤 신부를 맞이한 후 다음날 아침에 신부를 죽이는 폭정을 행하자 지혜로운 여인 ‘세애라지’가 스스로 왕비가 되어 1001일 동안 흥미 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왕의 마음을 돌리고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가 있다.
“꿈을 꾸는 듯한 마법 가득한 신비로운 땅 느낄 수 있어 소원을 한번 빌면 부와 탐욕을 채울 수 있는 길도 있어 어둠을 깨울지 행운을 깨울지 운명은 너의 손에 아라바안나아트” 김준선의 노래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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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영/뉴욕평통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