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VAC 등 조직절도 기승, 한인업소 12곳 ‘직격탄’
▶ 툭하면 정전·거액 수리비… 경찰 대응은 미흡
▶ 불황·단속 겹친 삼중고…“대응 없인 상권 붕괴”

LA 자바시장 샌피드로 선상 상가 건물 옥상에서 에어컨 장비가 절도범들에 의해 뜯겨나간 모습. [독자 제공]
자고 일어나면 전기가 끊겨 있고, 더워진 날씨에 에어컨을 켜도 작동하지 않는다. 옥상에 올라가 확인해보니 수만 달러에 달하는 냉난방 시스템(HVAC)은 처참하게 뜯겨 나가 있었고, 건물 외벽에는 정체 모를 그래피티와 범죄의 흔적만 남아 있다.
LA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내 한인 상권이 조직적이고 대담해진 절도 범죄의 표적이 되면서 생존의 기로에 섰다. 불황의 여파로 매출이 바닥난 상황에서 잇따른 약탈성 범죄까지 겹치며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상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12가와 피코 블러바드 사이 샌피드로 스트릿 선상 상가 입주 상인들은 유례없는 범죄에 망연자실해 있다. 사건은 지난 2월 말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고온으로 에어컨을 가동하려던 상인들이 기기 고장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인근 업소들 역시 냉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옥상에 올라간 직원은 처참하게 파손된 실외기를 목격했다.
범인들은 인적이 드문 심야 시간을 틈타 옥상으로 침입, HVAC 실외기를 뜯어 내부의 고가 구리선과 핵심 부품만 골라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장비를 무자비하게 훼손해 사실상 전면 교체 외에는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피해 규모는 기록적이다. 피코에서 12가 구간 내 건물들에서 최소 23개 업체, 총 30대의 실외기가 훼손됐다. 이 가운데 12곳은 한인 업체다. 해당 건물에서 20년째 도매업을 운영해온 이모(66)씨는 “에어컨 한 대당 교체 견적만 최소 1만 달러가 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보안 창살 설치비까지 더하면 피해 금액이 상당하다”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수리비를 마련하지 못해 우선 임시방편으로 포터블 에어컨에 의지하는 업주가 태반”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에어컨 절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피코 길에 설치되어 있던 USPS 우체통이 통째로 사라지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홀세일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우체통에는 손님들이 보낸 수표와 업체들이 결제용으로 보낸 수표까지 모두 들어 있는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구리선과 인터넷선까지 절단돼 전기가 끊기고 카드 결제 시스템이 먹통이 되는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범죄로 일부 업체는 영업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또 다른 업주 김모(58)씨는 “우리 옆 건물의 한 한인 업체는 지난 주말 사이 전봇대에서 건물로 연결된 구리선이 모두 끊겨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이번 주는 아예 영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해당 업체는 에어컨 설비까지 함께 뜯긴 상태”라며 “구리선 절도도 전기 회사가 모든 부분을 복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업주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있어, 그야말로 업친 데 덮친 격”이라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LA 시정부와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이다. HVAC 도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지난 6일 경찰에 신고해 리포트를 작성하고 케이스 넘버를 받았지만 “수사관을 보내겠다”는 말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수사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건물 관리가 느슨해지고, 경찰의 순찰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범죄에 취약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인 업주들은 이제 각자도생을 넘어 ‘단체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치안 허점이 도둑들에게 ‘털기 좋은 곳’이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주 박모(54)씨는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도둑들까지 기승을 부리니 답답할 뿐”이라며 “한인 업주들과 건물주, 시 정부와 경찰이 머리를 맞대 실질적인 보안 강화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패션 디스트릭트 상권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패션 디스트릭트 한인 상권은 이미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지난해 ICE의 이민단속 강화로 남미계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타주에서 오던 도매 손님들까지 방문을 꺼리면서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여기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자, 매출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고 일부 업소는 고정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주 박씨는 “거짓말 조금 보태 하루는 홈리스 화재로 마음을 졸이고, 하루는 절도 범죄로 삶의 터전이 훼손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라며 “상권을 지키려면 시 정부와 경찰의 실효성 있는 개입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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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