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손에 승리의 상징인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제 구원하소서”하며 외쳤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어 예수님 오시는 걸음을 맞이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길을 열어놓으신 개척자의 모습입니다. ‘패스파인더’(Pathfinder)란 개척자, 선구자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인 내 몸과 마음을 정하게 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구원의 패스파인더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믿음의 의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최대절기인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전 안은 온갖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은 물건을 바꾸고 환전하는 일, 등 온갖 세상일의 소굴이 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물건 사고 돈 바꾸고, 사람 만나고 하는 일이 기도하고 말씀보고 예배 드리는 일보다 더 우선하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점점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초한 믿음과 도덕이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신앙이 장식품이 되는 이 세대에 대한 믿음의 의분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의분이 있었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노라. 온 세상이 나를 대적한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대적하겠노라.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둘째, 믿음의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가장 잘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가루 서 말 속의 안 줌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서 말 밀가루가 한 줌 누룩을 삼킨 것처럼 보이지만, 한 줌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번식력 강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목사님들과 무궁화보급운동의 남궁억 선생, 3.1운동의 유관순 열사 등 민족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생명력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7:20)
겨자씨 같은 믿음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생명력이 있으면 됩니다. 물속의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생명력이 있기에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널빤지는 아무리 커도 생명력이 없기에 흐르는 물에 이리저리 딸려 내려갈 뿐입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이어야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그릇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셋째, 맥을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잘 치료하려면 진단을 잘해야 합니다. 한의사들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맥을 잘 잡는 것입니다. 맥을 못 잡으면 침을 아무데나 막 꽂습니다. 아프기만 하고 병은 도무지 낫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맥을 잘 잡아야 합니다. 맥을 못 잡으니까 열심히 하는데도 신앙은 도무지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맥을 못 잡으니까 교회는 오래 다녔으면서도 도무지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사람이나 설교하는 사람이나 맥을 못 잡으면 장황하고 길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나중에는 말하는 자기도 모릅니다.
올바른 교회생활을 통해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이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 생활을 하게 되면 끝이 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구원의 패스파인더가 됩시다. 믿음의 의분을 가지고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