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악한 최고 권력자들의 ‘왝더독’

2026-03-17 (화) 12:00:00 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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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더독(Wag the Dog)’이라는 표현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의미한다. 정치와 언론에서는 흔히 국내 정치의 위기나 스캔들을 덮기 위해 외부의 적이나 군사적 긴장을 부각시키며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전략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 용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이 1998년 영화 ‘왝더독’이다. 영화 속에서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리자 측근들은 할리웃 제작자와 손잡고 가짜 전쟁을 만들어낸다. 알바니아와의 전쟁이라는 허구의 사건을 연출해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 결국 현직 대통령은 대선에서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하고, 희대의 정치 공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흥미롭게도 영화 개봉 이듬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사일 공습을 단행하면서 ‘왝더독’이라는 표현은 현실 정치에서도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정치학 이론에서도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국내 정치 상황, 예컨대 정치적 양극화나 정권 위기, 선거 압박 등이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국제적 갈등이나 군사 충돌은 다시 국내 정치 지형을 변화시킨다.


역사적으로도 국내 정치 위기를 외부 갈등으로 돌리려다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을 이끌던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경제 위기와 군부 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자 이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침공했다. 그 결과 영국과의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은 오히려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군사 충돌 역시 단순한 안보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이란이 비대칭 전략을 활용해 대응하면서 점차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격의 명분은 이란의 핵 능력 고도화와 중동 지역 내 친이란 무장 세력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안보 전략이라는 외피 뒤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성범죄자 앱스타인 파일 연루 의혹에 더해, 정권의 향방을 가를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이라는 이중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시 최근 ‘의회 해산’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각 임기는 오는 10월까지지만 정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의회(크네세트)가 해산되고 다음 달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이번 전쟁은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네타냐후 총리가 오랜 기간 트럼프 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한 결과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치적 위기에 놓인 양국 최고 권력자들이 외부 갈등을 통해 국내 정치 문제를 희석하려 한다는 ‘왝더독’ 프레임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왝더독’은 영화보다 훨씬 잔혹하다. 정치적 계산 속에서 시작된 군사 행동의 피해는 결국 자국민과 국제사회가 떠안게 된다. 민간인 희생과 경제적 충격, 그리고 불안정한 국제 안보라는 막대한 비용이 뒤따른다.

실제로 이번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전쟁 지지율은 30%를 넘지 못하며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개전 직후 약 12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이 투입됐다는 추산이 나왔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 달러를 넘어섰다. 그 여파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

이제 유권자들은 정치적 프레임 뒤에 숨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국내 정치 위기를 군사적 긴장으로 덮으려는 사악한 지도자들을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책임이기도 하다.

영화 속 ‘왝더독’은 허구였지만, 현실의 ‘왝더독’은 현재진행형이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관객이 아니다. 이제는 정치적 연극을 끝낼 심판자가 되어야 할 때다.

<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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