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장 결정됐지만 전장 혼란한 틈으로 전달 못해 …“국가가 기억”

김태엽(오른쪽) 전 아시아나항공 시애틀지점장과 그의 형인 김유택(왼쪽)씨가 진교훈 강서구청장으로 훈장을 전수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엽 전 아시아나항공 시애틀지점장의 부친인 고(故) 김명진 병장이 75년 만에 화랑무공훈장을 전수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생전 끝내 받아보지 못했던 훈장이 사후에 유가족에게 전달되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한 참전용사의 용맹과 희생이 뒤늦게나마 국가로부터 공식 인정받게 됐다.
서울 강서구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구청장실에서 전수식을 열고 고 김명진 병장의 장남 김유택씨와 차남 김태엽 전 지점장에게 화랑무공훈장과 훈장증을 전달했다. 이번 전수식은 국방부와 육군이 추진 중인 ‘6ㆍ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두 아들은 물론 딸과 며느리, 손주 등 유족 8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예를 함께 기렸다.
1927년 2월 17일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김명진 병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일본 규슈 지역 군수공장으로 징용돼 강제노역을 겪었고, 광복 직후 귀국했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전시동원령에 따라 국군에 입대해 일반병사로 참전했다.
그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후퇴와 반격을 거듭하며 북진 작전에 참여했다. 서울 수복 이후에는 평안남북도 경계인 청천강 인근까지 진격했고, 중공군 참전으로 전황이 급변한 상황에서도 지휘관이 전사하는 위기 속에 선두에 나서 부대원들을 독려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특히 1951년 10월 강원도 양구 ‘펀치볼’(해안분지) 전투에서 선두에 서 병사들을 이끌고, 뛰어난 사격으로 적을 격퇴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김 병장은 치열한 고지전 속에서 목 부위 2발, 왼쪽 팔 2발의 관통상을 입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1년 10월 20일 화랑무공훈장 수훈이 결정됐지만, 전황이 워낙 긴박했던 탓에 실물 훈장은 전달되지 못했다.
정전 이후에도 복무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교전 중 입은 중상 후유증으로 1954년 5월 15일 의병 제대했다.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팔 부위 염증이 장기간 재발하는 등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1990년대에는 배우자가 국가보훈 대상자 신청을 수차례 진행했지만, 출생연도 기재 오류 등 자료 불일치로 번번이 반려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유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참전 유공자 등록을 다시 추진했고, 관련 기록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훈장 수여 결정 사실까지 밝혀졌다. 결국 올해 국가유공자 자격이 인정되며, 70여 년 만에 훈장이 유족 품에 안겼다.
차남인 김태엽 전 지점장은 “어릴 적부터 부친께서 평남 덕천과 청천강 일대에서 중공군과 싸웠던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양구 펀치볼 전투 공적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셨던 아버지의 희생이 이제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김 전 지점장의 주소지로 훈장을 직접 전수하게 된 진교훈 강서구청장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숭고한 희생에 깊이 경의를 표한다”며 “참전유공자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보훈가족의 예우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화랑무공훈장은 대한민국 네 번째 등급의 무공훈장으로, 전투에 참가해 용감하게 헌신하며 뚜렷한 전과를 세운 유공자에게 수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