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샹송화된 한국가요

2026-02-20 (금) 07: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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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

8.15 해방 이후에 서구로부터 외국 가요들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고, 한국 가수들이 외국 가요들을 원곡대로 부르거나 한국어로 번안해서 번안가요를 불렀다. 그러나 전통가요에 익숙한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외국 가요가 생소해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외국 가요 중에서도 프랑스의 국민 가요인 샹송은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켜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아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샹송을 번안가요로 불러 상당한 인기를 모은 가수가 현인이었다. 현인은 ‘파리의 아가씨’를 불렀고, 현인 샹송 집을 발매해서 샹송과 트롯 가수를 겸업했다. 본격적으로 샹송이 유명해진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서 최양숙이 샹송 가수로 등장하면서 부터다. 서울 예고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중 MBC 라디오에 전속되어 프랑스 인기 가수이자 배우인 이브 몽땅이 불렀던 고엽(Autumn Leaves), 에디뜨 피아프의 히트곡인 ‘빠담 빠담’ ‘사랑의 찬가’ ‘파리의 다리 밑’ 등의 샹송을 불러 인기를 모았다. 유명세를 탄 최양숙은 한국 최고의 작곡가인 박 춘석과 손을 잡고 발라드 풍의 최 양숙 샹송 집을 만들어 7080세대의 청춘 남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90년대에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심수봉이 샹송 곡인 ‘백만송이 장미’를 불러서 발라드 풍의 샹송 가수로 정상에 오른다. 심수봉의 창법은 독특한 미음을 샹송에 가미해서 발라드 샹송의 감성적인 달콤한 맛을 보여 주었다.


샹송이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가수인 셀린 디옹이 ‘사랑의 찬가’를 축가로 부르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녀의 노래는 온 세상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뜨거운 사랑을 선물했다. 셀린 디옹의 천재적인 노래 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온몸이 굳어가는 불치병을 치료하느라 병상에서 투병 중이었던 그녀가 올림픽 위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의사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전세계의 수십억명의 시청자가 기다리는 에펠탑의 공연무대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천사같은 모습으로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는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셀린 디옹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프랑스 샹송은 유럽을 넘어 세상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한국의 가요 제작자들은 발빠르게 움직여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샹송에, 한국의 유명 발라드 가수들의 곡을 프랑스의 가수들이 편곡된 한국판 샹송가요를 부르게 했다.

프랑스 가수가 노래하는 한국 샹송이 전세계로 전파를 타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훈희의 ‘꽃반지’를 필두로 25곡 이상의 샹송화된 한국 가요들이 외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샹송화된 한국의 발라드 가요들을 감상했다. 프랑스 본토 샹송곡과 같이 멋지고 아름다웠다. 세상 사람들을 매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인기 높은 5곡을 가까운 친지들과 내가 근무하는 코스트코의 12개 지사의 인터넷에 샹송화된 한국 가요를 소개했다. 수많은 동료들이 한국 가요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다. 현재의 한국 샹송 가요들의 호감도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살펴본다. 프랑스 출신의 독신으로 노르웨이의 서해안에서 5KM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살고 있는 재크린은 샹송을 좋아해서 매일 즐겨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생소한 샹송곡인 정훈희 원곡 ‘꽃반지’를 감상했다. 프랑스 본토 샹송보다 더 상큼하고 매혹적인 꽃반지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한국화된 샹송가요를 즐기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한국 샹송 곡이 프랑스 본토 샹송 곡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받은 만큼, 샹송화된 한국 가요들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국 가요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더 많은 샹송화된 한국가요들이 K-POP속의 한 장르로 자리잡아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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